더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

(잠언서 3:27-35)

주일 설교 (2015 8 23)

들어가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어떤 분이 이런 삶을 영어로 GREAT DREAM <위대한 > 이라고 말하면서 단어의 스펠링마다 행복해 지는 비결을 담은 단어를 나열을 것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0 Keys to happier life>: GREAT DREAM

Giving, do things for others.

Relating, connecting with people.

Exercising, take care of your body.

Appreciating, noticing world around you.

Trying out, keep learning new things.

Direction, have goals to look forward.

Resilience, find ways bounce back.

Emotion, take a positive approach.

Acceptance, be comfortable who you are.

Meaning, be part of something bigger.

목록 중에서 내게 가장 닿는 것은 바로 Giving, do things for others 입니다. 다음은 관계 맺기인 Relating, connecting with people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째가 주변의 진가, 참된 가치를 인정하며 음미하고 감사하는 것인 Appreciating, noticing world around you 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세가지가 서로 연관이 되는 같습니다. 당신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존재들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 사람들과 좋은 관계망을 형성하는 ,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무엇인가를 베풀고 나누어 주고 무엇인가를 주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비결임에 틀림이 없는 같습니다.

주제는 오늘 본문의 말씀과도 깊이 연관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저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표현을 하자면 구원 받은 백성이 구원 이후의 삶을 어떻게 복음적이고 행복하게 것이냐에 대한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잠언서 전체의 주제에 맞게 말을 하자면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인간관계 속에 생겨나는 다양한 경우들에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야 행복한 삶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의상 본문을 단락으로 나누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단락은 3 27절과 28절입니다. 핵심 주제는 필요한 자에게 힘이 닿는 대로 주고 베풀라. (3:27-28)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손이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3:27-28) 지난 언제였습니다. 아시는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분이었지만 자주 연락은 안하고 사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분이 어렵게 말문을 핵심은 돈을 조금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 재산이 있는 일이 지연되어서 당장 얼마가 필요한데 망설이다가 제게까지 전화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는 분이고 게다가 그분은 신실하신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저는 아내 허락 없이 그런 일을 있는 남자가 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의논한 저희로는 적지 않은 생활비 일부를 빌려 드렸습니다. 저희 사람은 그냥 셈치고 잊어버리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그렇게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다시 그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추진하는 일이 지연되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하니 다시 조금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없었고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연락도 없다가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돈이 없어서 어렵게 거절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내가 제게 고백을 했습니다. 말을 했는데 지난 번에 분에게 전화가 와서 저에게 말도 안하고 번째 돈의 배의 돈을 빌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화를 냈을까요? 아니면 칭찬을 했을까요? 저는 그래? , 아줌마 깡이 늘었는데. 혼자 그렇게 하고…. 잘했어!” 그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신하십니까? 오늘 본문 27절은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교훈합니다. 마땅히 받을 , those to who it is due”라는 말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본문은 정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28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이웃입니다.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마땅히 받을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이웃을 말합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문맥상으로 마땅히 받을 우리가 마땅히 돌보아야 하는 이웃과 친척들, 동료들과 친구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훈이 주어지는 것일까요? 많은 경우 지켜지니까! 외면하고 베풀지 않고 거절하니까 그런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죄악 본성은 나눔과 베풂보다는 쌓아 두고 싶어하고 독차지하고 싶어합니다. 함께 누리기 보다는 혼자 누리고 싶어 합니다.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가난이나 헐벗음보다는 내가 부자가 되고 내가 갖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너그럽기 보다는 인색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본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미워하고 벌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너그러운 베풂의 삶을 통해 행복한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인간이 생각하고 고안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행복의 비결입니다. 바로 후한 아량과 아낌없는 베풂의 마음씨를 통해 나오는 행위들로 인해 주어지는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지침입니다.

어떤 분이 베풀고 주는 것이 성공의 만능 열쇠입니다. 열쇠는 인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받는 것은 주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은 받는 대로 주거나 받은 것보다 적게 주려고 하고 심지어는 갚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게다가 때로는 그런 행동을 똑똑한 거래로 착각을 하고 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삶의 원리는 나눔으로 기쁨의 완전함을 누리고 베풂으로 소유의 진정한 가치를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진짜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 보물을 쌓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자임을 곳곳에서 증거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타인과 나누는 것은 결코 무가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것이라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은 무가치하거나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진실된 마음이 있을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건강하고 행복한 영혼이 있을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진실된 겸손과 사랑이 있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베풀고 나눌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나눌 영혼과 마음이 없는 불행한 사람일 있을 뿐입니다. 이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이었던 Winston Churchill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We make a living by what we get. We make a life by what we give. 우리는 우리가 얻는 것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주는 것으로 우리의 일생을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열심히 벌고 얻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로 일상이라는 삶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주고 나누는 성경적 원리를 삶에 순간 적용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교훈을 가르치실 분은 아무것도 하고 우리에게만 선행을 강요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 6524) 하나님은 약속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달라고 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정확하게 보시고 자신의 가장 귀한 독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마치 마땅히 받을 자에게 내어 주시듯이 그렇게 독생자 예수님을 아무 망설임도 없이 죄인인 저와 여러분들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사실을 여러분들이 진부하게 느끼든 고전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든 상관없이 진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가장 소중한 이웃으로 인정하시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사실을 기억하고 닮아가기 위해 성탄절까지 기다리거나 부활절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들의 이웃은 이미 우리 주변의 곳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걸음을 멈추시고 주변을 한번 찬찬히 둘러 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보일 것입니다. 아마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베풂과 사랑의 나눔을 기다리는 영혼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숨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손을 붙잡아 주십시오. 그들에게 작은 나눔과 베풂의 잔치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이 행복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성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번째 행복해 지는 비결은 이웃의 형통과 번영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Peace maker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해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절과 30절입니다.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웃이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29-30)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말이 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Turning green with envy.” 입니다. 남이 되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남이 잘되면 .. “배가 아프네!” 라고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명사인 속담입니다. 그런데 이건 일제 식민지 시절의 민족말살정책의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속담의 유래를 알면 이해가 됩니다. 요즈음처럼 비료가 발달되지 못한 예전에는 최고의 비료는 바로 인분이었습니다. 사람의 똥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살았던 동네에도 집집마다 화장실에는 똥장군이라는 인분을 퍼다 밭에 주는 전용 항아리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옛날 말에 죽는 객지에서 죽어도 일은 집에 와서 보라.” 말이 있습니다.
별달리 비료가 발달 되지 않았던 농경시절에는 대대로 사람의 똥은 최고의 비료였습니다. 그래서 기록에 보면 똥을 사고 팔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분은 정말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지금보다 삶의 질이 형편없이 낮았던 시대였습니다. 부자나 사대부가 아니고선
대부분 자기 땅을 갖기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사촌이 땅을 샀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삶이 풍요롭지 못해서 축하해주고 싶은데 가진 없다 보니 마땅히 선물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땅에 가장 필요하고 요긴했던 인분을 선물로 주었다고 그래요. 예를 들면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신호가 오면 길도 마다 않고 집에 와서 봤던 바로 그것! 우리 집이 아니고선 절대 아껴두었던 그것, 바로 그걸 밭을 사촌에게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은 남이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민족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기 위해 반대 의미를 담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속담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속담을 일본인들이 만들어 조선 사람들에게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너희 민족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민족이다 라는 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좋은 일에 서로 축하 주고 기뻐해 주던 좋은 민족 정신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불행한 정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확인할 길은없습니다. 하지만전해 주는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웃의 번영과형통을 기뻐해주는 사람이질투하고 시기하며 아파하는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하나님의 말씀이바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이웃의 번영과형통을 진실된마음으로 기뻐해 있는 사람은진정한 인격자입니다. 성숙한 성도의 삶입니다. 이게 바로저와 여러분을향한 우리하나님 아버지의마음입니다. 너희 하나님여호와가 너희가운데 계시니그는 구원을베푸실 전능자이시라그가 너로인하여 기쁨을이기지 못하시며너를 잠잠히사랑하시며 너로말미암아 즐거이부르며 기뻐하시리라하리라( 3:17)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시고 우리를 축하 주시고 축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구원의 은총 안에 들어 우리를 바라보시며 사랑에 겨워 노래하시고 추시며 축하해 주시고 기뻐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되는 것을 지켜 보시며 흐뭇해 하시는 하나님!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형제가 되는 것을 보며 질투로 얼굴색이 변하고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해 주는 인격적 그리스도인이 행복한 삶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불화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내는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호흡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고 평화의 왕자십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끊어지고 무너진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고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들의 입술에는 화평케 하는 인격적 언어가 나옵니다. 그런 사람의 삶에는 다툼이 아닌 세워줌의 영성이 나타납니다. 분노가 소멸되고 이해와 양보의 폭이 넓어진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인격이 나타납니다. 그로 인해 주변에 화평과 화해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 일이 일어 날 때 주가 가장 행복할까요? 바로 그 화평을 창출해 낸 화평케 하는 자 당사자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순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두 번째 비밀 열쇠를 얻었습니다. 이 열쇠를 잘 사용하시므로 더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마지막 비결입니다. 31절에서 35절입니다. 악한 자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3:31) 그리스도인들은 죄악 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악한 자가 행하는 어떤 삶의 방법도 모방하거나 따라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지요? 본문에 보면 분명한 이유가 여러 가지 주어집니다. 32절을 보면 이런 사람은 여호와가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33절을 보면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34절에 보면 악인은 곧 거만한 자인데 하나님의 비웃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35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영달은 수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악인의 반대가 되는 바른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를 말합니다. 32절에 보면 정직한 자는 하나님이 자신 있게 받아 주십니다. 33절에 보면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습니다. 34절을 보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35절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명예를 얻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들인데 그들의 삶의 결과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35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3:35)

우리는 때때로 악한 자의 흥함과 번성함을 보며 속상해 하고 번민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나 하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바른 성도의 삶의 방법이 혹시 지나치게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3:31) 다윗도 저희와 똑 같은 고민과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 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37:1,27) 포학한 자를 다루실 하나님의 처방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같은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악하고 포학자가 득세하고 그들이 흥하고 번성하는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항변하듯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1:13) 그때 하나님께서 그 유명한 대답을 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2:4)  

이제 포학자가 잠시 성공을 하고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상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에 대해 명확한 답이 주어졌습니다. 이 하나님의 답대로 살면 저희는 악과 부정이 난무하고 비정상이 정상처럼 여겨지는 사회 속에 살아가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그 모든 것을 공의로 다루실 여호와를 신뢰하며 여전히 성실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방법과 시기를 기대하며 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정황이 어떠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매 순간은 훨씬 더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가는 말

결론을 맺겠습니다.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첫째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너그럽고 넉넉한 삶을 살아 보십시오. 이전 보다 훨씬 더 행복해 지실 것입니다. 둘째, 이웃의 번영과 행복을 축복해 주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셋째,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꿋꿋이 성도의 섦을 살아가십시오. 믿음으로 인내하며 성실을 식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하나님의 은혜에 잠긴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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