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역사의 시작
(누가복음1:1-17)
2021년11월 7일(주일 설교)
들어가는 말
여러분,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란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를열심히 살았던사람들의 기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요성은 재미를 넘어 “열심히 살았던사람들을 앎으로지금 현재를열심히 살려고하는 우리에게도생각을 위한힌트나 재료를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역사 중에 가장 중요한 역사인 구원 역사의 시작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현재 믿음의 삶을 열심히 살려는 여러분 모두에게 거룩한 영적 힌트와 재료를 공급받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기록할 수도 있고 일어난 시간적 순서로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들로 구성이 됩니다. 하지만 역사는 모든 사건을 다 기록한다고 해서 좋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동일한 역사적 비중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는 그 의미가 역사의 중요성을 결정합니다. 많은 사건들이 실상은 사소한 일이거나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위한 보조적 사건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중요성은 그 사건이 이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에게 주는 의미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이루어진 사실
오늘 저희는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을 다루는 일종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구원사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사건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기록하고 모든 사람이 그 은혜 위에 확실하게 서게 하는 것이 바로 누가 복음의 목적입니다. 3절과 4절에 분명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모든 일을근원부터 자세히미루어 살핀나도 데오빌로각하에게 차례대로써 보내는것이 좋은줄 알았노니이는 각하가알고 있는바를 더확실하게 하려함이로라.” 구원의 은혜에대하여 알고있는 바를더욱 확실하게하는 것이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배운 바 지식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서두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중에 이루어진사실에 대하여” 이 말은 “우리 가운데서 성취된사실에 대하여”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배운 바 지식은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을 말합니다. 창세기부터 구약에 수없이 예언되었던 구원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이 수없이 많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시도한 사람도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기술하려고 붓을 든 자들이 많은지라” 2절입니다. 여러분, 이 당시에 무엇인가를 붓을 들어 기록한다는 것은 오늘 날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종이도 없고 필기도구도 없던 시절입니다. 양 가죽을 뒤집어서 털이 없는 곳에 기록하는 양피지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글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이런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너무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이렇게 예수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큰 사건들을 접하고 겪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며칠 지나면 잃어버립니다. 미국 무역 센터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천안함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만 세월이 지나도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이들이 기록하려 했던 예수 사건은 다릅니다.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묵상됩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사건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할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는 이 예수 사건을 기록하면서 당시 세속역사 속에 중요한 인물이었던 헤롯을 언급합니다. 5절입니다. 이 은혜의 사건은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일어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는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지나가도 불변해야 합니다. 진리는 시간을 따라 진화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발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리는 이미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사건을 기록할 때 “전하여 준그대로”라고 말합니다. 왜곡되거나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누가 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 자신도 “모든 일을근원부터 자세히미루어 살폈다.”고 말합니다. 아시는 대로 누가는 의사입니다. 의사의 치밀함을 가지고 구약의 예언을 살피고 예수님의 행적을 살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사건이 너무 정확하게 약속의 성취였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진정성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사건에 온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신앙은 절대로 한 다리 건너 신앙일 수 없습니다. 간접체험은 언제나 간접 체험일 뿐입니다. 누구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누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신앙체험 가지고 힘있고 살아있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본인이 살피고 체험해야 합니다. 전하여 준 것을 믿고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라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경험한 이야기는 힘 주어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자신이 말씀의 목격자들과 그 일군들로부터 전해 듣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보면서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써서 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복음서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삶과 죽음의 문제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은혜를 다른 사람도 알고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저도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 예언된 구약성경을 자세하게 살펴 보는 영적 탐구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저주의 운명이 축복의 운명으로 바뀐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 동일한 영적 체험을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누가처럼 전하고 또 전해서 누군가에게 믿음의 집을 확실하게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누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들로 사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사의 서곡
두 번째 단락인 5절에서 7절은 드디어 구원 역사의 서곡을 기록합니다. 헤롯이라는 분봉왕이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정하신 장소를 통해 인류를 향해 다가오신 은혜사건의 출발점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첫 번째 사용되는 사람이 바로 사가랴라는 제사장과 그 아내 엘리사벳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암울한 어두움의 시대입니다. 나라는 로마에게 빼앗겼습니다. 로마가 세운 왕 헤롯은 사악하고 잔인한 매국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침묵하시고 계신 상태입니다. 게다가 종교 지도자들은 썩고 썩어서 백성들은 영적으로 어두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현실속으로 임하셔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속으로 들어오셔서 보통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암울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밝고 희망찬 일을 시작하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는 시대라도 하나님의 새 역사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시작되고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뒤를 둘러 보아도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오히려 더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환경과 여러분들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부터 출발되는 게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배반과 불순종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인류를 사랑하시고 약속대로 그 아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새로 시작하시는 역사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해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오늘 본문에서도 극명하게 증명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절대절망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못하므로 그들이자식이 없고두 사람의나이가 많더라.”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이 인간일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철저하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기록합니다. 게다가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하나님 앞에의인이니 주의모든 계명과규례대로 흠이없이 행하던”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노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는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죄의 권세아래 종노릇하는 모든 인류의 소망없는 상태를 대변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의 새역사가 시작됩니다. 구원의 대 역사는 출발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절대절망의 상황 속으로 하나님의 절대소망이 뚫고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구원사의 비밀입니다. 인간의 절망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소망,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상황이 어둡고 암담할수록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이나 주변을 보지 말고 위를 향해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 시작될 것입니다.
사역하는 중에 임하시는개인의 축복
세 번째 단락인 8절에서 13절은 놀라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8절을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제사장으로 뽑혀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률입니다. 당시 유대 제사장의 반열은 24반열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뽑혀 섬기는 것입니다. 굉장한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일입니다. 일의 중요성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해 일하느냐가 그 사람의 중요성을 증명합니다. 맡긴 자가 누구냐가 맡은 자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맡긴 자가 대통령이나 왕이면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부르심을 따라 하는 거룩한 사역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이 저처럼 설교를 하는 것이든,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든, 아니면 부엌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역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맡기신 분에 의해 그 중요성이 결정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확신이 있으면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맡았든지 깊이 감격하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맡겨 주신 것 자체가 은혜요 특권인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중요한 영적 진리를 한 가지 가르쳐 줍니다. 이런 사역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행한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사가랴가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하나님 앞에서행할쌔”라고 기록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신 분 앞에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사람의 눈을 인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눈을 인식하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봉사를 할 때, 예물을 드릴 때, 기도를 할 때, 무엇을 하든지 사람 앞이라는 주소가 하나님 앞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때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가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직무를 수행하는 사가랴에게 엄청난 축복이 주어집니다. 13절입니다. 사가랴가 성소에서 분향을 하며 사역을 행합니다. 그리고 밖에 서 있던 모든 주의 백성들을 기도를 합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향단 우편에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말라. 너의 간구함이들린지라. 네 아내엘리사벳이 네게아들을 낳아주리니 그이름을 요한이라하라.” 사가랴에게는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천사를 만나자 사가랴는 처음에는 두려워하며 놀랍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는 뜻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신령한 존재를 대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입니다. 바른 성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기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닐 뿐 아니라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자연적 반응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어려운 일이나 불행을 경험하면 사람들은 즉시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내가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시나? 은밀한 것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 그게 첫 번째 반응입니다.
그때 “두려워 말라.”는 평안의 메시지가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생각을 내가아나니 평안이요재앙이 아니라너희에게 미래와소망을 주는것이니라.”(렘 29:11) 평안을 선포한 천사가 미래와 소망의 메시지를 줍니다. “네아내 엘리사벳이네게 아들을낳아 주리니그 이름을요한이라 하라.” 13절입니다. 자기를 섬기는 자의 사정을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아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다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섬김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봉사의 과정에서 기도의 응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자,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당연히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가랴의 간구함이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응답의 기회를 기다리십니다. 본문을 보면 이름까지 지어 주십니다. “요한”입니다. 당시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지만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는 귀한 이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요한, John”이란 이름을 가진 분이 여러분 게신데 혹시 자신의 이름의 뜻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셨다.” 또는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우셨다.”는 의미입니다. 멋진 신앙고백이지요.
오늘 말씀을 보면 사가랴 제사장이 이런 은혜를 받아 누리는 영적 요소들 네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요소를 삶에 가지고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6절과 8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눈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아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6절에 나옵니다. “주의 모든계명과 규례대로흠이 없이행하더라.” 사가랴와엘리사벳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는 맡겨진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에 충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넷째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절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고 기도에 힘을 쓰시며 주의 일에 충성하셔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불가능 가운데에도 최고의 복들을 받아 누리시는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만민의 기쁨을 예비하는사역자 세례요한
마지막 14절에서 17절은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태어날 세례 요한의 특성과 사명에 대해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쁨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사가랴의 개인적 기도응답을 통해 예견된 모든 인류에게 주어질 기쁨입니다. 바로 그 기쁨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사역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과 구별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 인물의 크고 작음은 그 주인에 따라 결정됩니다. 요한은 이제 곧 인류의 역사를 뚫고 인간의 삶의 현장으로 임하실 메시아 예수님 때문에 큰 자인 것입니다. 요한이 큰 자이고 위대한 것은 그가 맡은 사명 때문입니다. 구원자의 길을 예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예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5절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혀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방법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친히 행하실 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이끄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것을 성령에 사로잡혀 그 분의 통치와 통제아래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합니다. 맡기고 신뢰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나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게 바로 17절에 기록하고 있는 엘리야의 사역의 모습입니다. “엘리야의심령과 능력”은 바로 성령에 사로잡힌 선지자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도 이런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심령이 바로 우리의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바른 사역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에 충만해서 주의 일을 은혜로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세례 요한의 사명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자손을 주곧 그들의하나님께로 많이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6절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의 사명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인의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게 선지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요한의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곧 왕이신 예수님께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왕이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 회복을 말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요즈음 세상의 영적 기류와 상황을 보십시오. 예배와 기도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도덕의 붕괴와 윤리의 실종을 생각해 보십시오. 더 이상 타락할래야 할 수 없을 만큼 바닥을 치고 있는 이 시대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깨어지고 어긋난 영적 관계회복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의 첫 번째 사역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정의 회복입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서 돌리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 도를 넘어 부모가 자식을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가장 기본적이 관계의 단위는 부모와 자녀의 사이입니다. 이 사이마저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사라졌고 존경과 신뢰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가정의 회복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주를 위하여세운 백성을준비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나가는 말
금주부터 저는 누가복음을 매주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 그 첫번째 말씀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앞으로 매주마다 함께 누가복음을 묵상하며 예수님을 체험하시를 바랍니다. 영으로 은혜의 양식을 사모하고 풍성하게 드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적용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누가 복음이 기록될 당시 만큼이나 암울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사회 현실은 코비드 19이라는 질병으로 인해 혼돈과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 탄생 시기때와 같이 나태와 타성에 젖어 자신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형식적 신앙인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그런 새로운 구원 역사의 출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코비드 19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단맛과 물질 만능주의 젖어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과학과 의학의 진보가 인간을 질병없이 영원히 살게 할 줄로 착각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왕노릇하며 살수 있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들어 났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연약하며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 사건에 기초를 둔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배운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위에 믿음의 집을 확실하게 지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성령님의 사역하심에 나를 내어 주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옵니다. 사회가 회복됩니다.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셋째는 요한의 사역 내용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400년을 침묵하시다가 요한을 통해 구원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구약의 약속대로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요한과 같은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주인공으로 재림하실 만왕의 왕을 예비하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이 시대의 증거자 요한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간절한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영혼의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변 예배를 재개하면서 교회를 다시 개척한다는 각오와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암흑같은 코비드 19을 뚫고 새로운 구원 역사의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오늘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갸랴와 엘사벳처럼 성실하고 충성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다가 감당하다가 기도 응답의 기쁜 소식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을 낳는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나 세상적 기준으로는 불가능한 은혜까지 넘치게 받아 누리시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