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God Who has come and redeemed.)
(누가 복음1:67-80; Luke 1:67-80)
주일 설교 (2021년 12월 12일)
들어가는 말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면
좋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자신이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생각할 때 자기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의 실제 모습을 차츰 알아가면서 생각을 조절합니다. 아, 진짜 실체는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보통 우리의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실까? 그러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면 좋겠다 생각하며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차츰차츰 알아갑니다.
예전에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성찬식을 거행하기 위해 가운을 입고 교회당에 들어섰는데 주일학교에 속한
네 살짜리 아이와 마주쳤습니다. 그 아이가 평소와
복장이 다른 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더니 반갑게 질문했습니다. “Are you God?” 그 순진한 질문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습니다. 그 아이가 생각하던 하나님의 모습이 제가 근엄하게 예복을 차려 입은
모습 속에서 나타났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전혀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또는 아이들만 하는
생각은 아닙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Xenophan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말이 사람들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말은 그들의 신을 말
모양으로 그렸을 것이다.”
자기의 생각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은
이런 분일 꺼야 하고 상상합니다. 또는 이런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우리의 상상력이나 형상화하는 마음의 능력은 주관적일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울고 있다면 위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웃고 있다면 기분이 좋은가 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상이나 생각이 항상 실재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슬픔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너무 기뻐도 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결혼식에서 양가 부모님을 대표해서 신랑 아버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울컥해서 말을 잘 못하시더라구요. 슬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기뻐서 감정 조절이 잘 안되었다고 그러더라구요. 너무 어이가 없이 슬프고 어려워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실재와는 다른 여러가지 상상의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형상화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종교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한 척 하는 사람도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은 신을 형상화해서 부처와 같은 온갖
종류의 우상을 만들지만 그것이 실제 하나님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허무한
행동을 절대 금지하셨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 20:3-4)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하나님이 실재의 하나님과 얼마나 일치합니까? 아니면 무엇인가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까?
친히 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줍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언하는 사가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찬양합니다. 본문을 사가랴의 노래 또는 사가랴의 찬가라고 부릅니다. 사가랴는 10개월을 말을 못하고 지냈던 사람인데 아들 요한이 할례 받던 날 입이
열린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아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랴의 찬양은
아들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찬양이 아닙니다. 또는 10개월 만에 다시 말을 하게 된 치유의 기적을 찬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찬양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 속에서 성취된 말씀의 역사를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계시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고 메시아를
주신 것에 대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를 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그 백성 가운데 행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충만해지면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사가랴의 찬양은 구약 시대를 종결하는 마지막 예언인 동시에 신약 시대를
여는 최초의 예언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에 대한
메아리인 동시에 말씀의 성취와 함께 시작된 새 시대의 감격과 환희가 담긴 성령의 노래입니다.
이 사가랴의 찬가는 그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67절에서 75절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찬양합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미래
사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세례 요한의 출생 직후,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바로 직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이 충만해서 할례를 받는 겨우 8일 된 아들을 안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을 선언하고 미래에
될 일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에게 친히 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자기 백성과 소통하시기를 그치신 적이 없습니다. 곤경에 빠진 그들을 이유없이 방치하신 적이 업습니다. 언제나 그분의 긍휼을 보여 주심으로 자기 백성과 관계를 지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자비와 긍휼로 다가 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가랴는 이미 개인적으로 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직접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찬양은 그냥 요식행위나 예배의 순서 중 하나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이요 감격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영역이 확장되어서 공동체에게 약속을 주시고 마침내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올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의 전반부 67절에서 75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의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예로부터 주께서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68-75절) 이렇게 메시아의
오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명합니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개인적으로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가랴입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 경험 속에서 더 큰 것을 보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자기 조상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 사가랴의 찬송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실재를 만납니다.
첫째 그분은 그 백성을 돌아보시고 속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기억하시고 백성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다가와 속량하십니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68절입니다. 그 백성에게 친히 와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모른 체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켜 보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소망이 있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다가와서 구원하실
때였습니다. 애굽에 종이 되어 지내던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구원해 내심으로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때 새로운 축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소망이 시작되나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다가와서 구원해 주실 때 아닌가요? 여러분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사가랴처럼 찬양의 이유를 개인적으로 가지고 계신가요? 그런 것을 범사에 찾아 인정할 줄 아는 게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풍성한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 사가랴의 찬양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구원이 뿔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9절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신 구원의 뿔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만이 아니라 다윗에게 하신 약속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행동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긍휼을 펼쳐 가시는 데 그 정점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신을 내어 줌으로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 바로 사가랴가 찬양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바로 구원의 뿔입니다. 그 구원의 뿔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죄와 사망입니다. 이제 몇 달 후면 태어날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메시아입니다. 이게 바로 사가랴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실제 모습입니다. 구원의 뿔이 되시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모시기를 축복합니다.
세번째는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결과 의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74절과 75절입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우리가 변화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완벽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를 변화시켜
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예배자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예전에는 현세적인
것에 묶여서 영원한 소망이 없었는데 이제는 영원을 사모하는 영생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죄를 지어도 무감각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고 편하지 않습니다.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계속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변화시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은 존재로, 더 성결하고 거룩한 존재로 성장시켜 가십니다. 이런 성장과 변화를 통해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성령의 감동과 일하심을 통해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 한 예가 바로 오늘 본문의 찬양자 사가랴입니다. 누가의 처음 그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유대와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명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누가 복음 1장 5절과 6절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흠없이 행하는 사람, 거의 완벽한 칭찬입니다. 그런 사가랴에 어떤 일이 있었지요? 자기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신앙으로 반응해서 벙어리가 된 것을 기억하십니까?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 지리라” 누가 복음 1장 20절입니다. 사가랴가 어리석다는 말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완벽해서 사랑받고 은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이 긍휼과 은혜를 저와 여러분을 감싸고 계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랑과 자비의 대상으로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성결과 의로 섬기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가랴의 찬송 중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실제 모습은 첫째 자기 백성에게
친히 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번째는 구원의
뿔 예수님을 일으켜서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번째는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성결과 의로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첫번째 단락의 내용입니다.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는 선지자
두번째 단락은 76절에서 80절입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사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버지 사가랴에 의해 찬양으로 예언되는 내용입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76-79) 이 예언의 말씀을 읽을 때 떠 오르는 것 혹시 없으신가요? 바로 우리가 묵상했던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준 예언입니다. 누가 복음 1장 15절에서 17절입니다. “그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눅 1:15-17)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깊이 경험한 스가랴가 이제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을 가사로 해서 찬양하며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늙어서 얻은 독자를 하나님께 헌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그도 개인적으로 곁에 두고 편안한 길 걷게 하며 애지중지 키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개인적 하나님 체험과 성령의 감동이 어우러져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 요한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8일 된 아들을 안고 메시아의 구원 사역에 그 아들을 바치며
감격에 겨워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게 예언과 약속의
말씀이 자기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 하나님에 사로잡힌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크게 기도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사가랴처럼 하나님께 진심 어린 찬양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앞당겨 감사하는 행복한 부모가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대로 우리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때가 되면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고 이루십니다. 이 하나님의 손에
자녀들을 맡기고 믿음으로 키우십시오. 이 사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배제된 인생은 비참한 인생입니다. 돛이 없고 닻도 없는 방황하는 인생이요 마침내는 난파하는 미래가 없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아들인 요한의 미래를 노래하면서 사가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줍니다. 위로부터 돋는 해 같은 분이십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여명은 오직 위로부터 아래로 임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떠 오르는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고 온 천지를 환하게 비추듯이 영원한
빛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그늘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기 요한은 이 왕 중의 왕이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선지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참된 메시아를 향해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듯이 세례 요한과 메시아 예수님의 사역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감합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 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본문 80절입니다. 이제 이 세례 요한이 무대에 등장하면 메시아의 길이 예비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타고 메시아 예수님이 인류의 역사속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 개인의 삶 가운데로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올무에서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으로 친히 오셔서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요약하고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우리 어떤 분일까요?
친히 와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백성 속으로 들어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긍휼과 사랑의 행위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현장에 친히 오셔서 행하시는 일들을 체험하시는 주인공들이
됩시다. 하나님의 실제를 직접 체험하는 살아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래서 매일 매일을 그분의 주권과 은혜를 깊이 찬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두번째는 사가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녀를 양육합시다. 믿음으로 키우고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기도로 꿈을 심어 주고 말씀으로 지혜를 가르칩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성령의 자녀들이 되도록 격려하고
기대합시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세상을 이끌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건설하는 이 시대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