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임하신 메시아

낮은 곳으로 임하신 메시아 (The Messiah Who lowered Himself.)

(누가 복음 2:1-7, Luke 2:1-7)

20211219(주일 예배)

들어가는 말


여러분, 여러분들의 생일 기억하시지요? 그럼 태어나신 장소도 기억하시나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태어난 아기에 관한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병원 주차장에서 태어난 아기도 있었습니다. 진통이 있어서 병원으로 급히 갔는데 병원 문에 들어 서기도 전에 그만 주차장에서 출산 한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New Jersey 주 해리슨 시에 라비타 샤카라는 31살 된 자매가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진통 비슷한 느낌이 들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은 아기가 태어날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정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2012112일 기차를 타고 병원이 있는 New York시로 향하고 있을 때 라비타는 진통을 느끼면서 점점 더 심해지자 남편을 붙잡았습니다. 남편이 혹시나 해서 점검을 해 보니 아기의 머리가 이미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주변 승객들의 도움을 받으며 예쁜 사내 아기가 태어났고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조그만 여자 아이가 선물로 벗어 준 자켓으로 아기를 감쌌습니다. 기관사는 응급 상황을 본부에 알린 후 급행 열차로 전환했습니다. 중간에 서지 않고 달려서 맨하탄에 있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안전하게 후송되어 마침내 라비타는 아기를 품에 안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가끔씩 기사로 실립니다.


제가 읽은 것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2008년 인도의 기차에서 엄마가 화장실을 가서 힘을 주다가 아기가 나와서 철로 위에 떨어진 사건입니다. 예정일보다 두 달을 조산해서 생긴 일입니다. 다행이 엄마가 소리를 치고 사람들이 기관사에게 알려서 기차를 멈추고 아기를 철로 위에서 줍게 되었는데 아기는 다치지 않고 건강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출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려 드린 독특한 출생보다 더 독특하고 중요한 아기의 출생에 관해 말해줍니다. 바로 메시아, 구원의 하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메시아가 태어난 시기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의 시기와 장소를 말해 줍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은 출생의 시기를 언급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첫번째 성탄절입니다. 누가 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에 대해 다루는데 오늘 본문이 그 중에서 바로 그 탄생에 관한 기사입니다. 본문은 그때가 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하던 때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게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례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분문 1절과 2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구스도는 당시 로마의 황제 Augustus를 말합니다. 그의 본명은 Octavianus 입니다. 원래는 Caesar Julius의 누이동생인 Julia의 딸 Attia의 아들이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오빠인 Julius 가 황제였던 것입니다. Julius황제가 18세 된 Augustus를 양자로 삼자 Caesar라는 성을 물려 받아 Octavianus Julius Caesar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Julius황제가 되어 주전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한 후 Antonius를 물리치고 로마 제국 전체에 대한 단독 통치권을 쥐게 됩니다. 1년 후인 주전 30년에는 로마의 최고 사령관과 로마 원로원의 수장이 됩니다. 그리고 주전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구스도 (Augustus)라는 칭호를 수여 받습니다. 이 칭호는 숭고한 자, 고귀한 자, 지고자라는 의미로 거의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때에는 거의 신처럼 추앙을 받았으며 죽고 난 후에는 더 신적으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실권을 쥐고 얼마 후 로마 제국의 통치 기반을 든든히 하기 위해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인구 조사의 목적은 첫째 세금 재원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고와 재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둘째는 유사시에 군대 동원 능력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나라가 인구 조사를 실시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호주는 매 5년 마다 실시합니다. 금년이 2021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미 올해 모두 참여하셨습니다. 이제 5년 후인 2026년에 다시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는 황제의 명령이 있을 때만 했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인 주전 6년에 실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태어나던 해에 다시 실시가 된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인구조사에 대해 기겁을 할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역사적으로 무섭고 호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하 24장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로 3일 동안 온 유대에 전염병이 돌아 7만명이 죽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유대인들 중에는 인구조사를 극구 반대해서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37 참조) 인구 조사를 한다는 것은 말씀드린 대로 국고와 재정, 군사력에 관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조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불신의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요셉과 마리아가 이런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황제의 명령을 따라 호적을 하러 자기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보통은 남자만 올라가서 등록을 하면 되었지만 요셉은 임신중인 마리아를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 장면에서 또 다른 역사적 인물 한 사람이 기록됩니다. 2절에 나오는 수리아 총독 구레뇨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 태어나기 12년 전부터 수리아의 최고 사령관을 지내다가 총독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역사적 인물들을 기록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의 역사적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계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요셉과 마리아로 하여금 그 시기에 베들레헴으로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문명과 정치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은 나사렛의 산골짜기 유대 산중 마을까지 미쳤습니다. 누가 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이런 모든 일들을 역사의 실제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로마 황제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구스도와 구례뇨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역사에 시중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세상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라는 한 아이의 탄생은 세상에 주목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신문 기사 거리로 따지자면 단 한 줄도 쓸 필요가 없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이 사건을 소위 특종 중의 특종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는 이 아기의 탄생이 인류역사를 판가름할 사건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의 탄생배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과 약속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 오리니 (5:2-3)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고 약속하신 말씀이 가이사 아구스도의 통치 때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세상의 구세주로 인간의 무대 가운데로 들어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던 그 아기 예수의 탄생이 오늘날 성탄절이 된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인류의 삶의 현장으로 임하신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육신을 입으시고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신 은혜의 날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날자는 모릅니다. 정확한 날짜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1225일로 지키게 된 것은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였던 Constantine 대제 때인 서기 336년부터입니다. 정확한 날짜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의미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어둠을 밝히는 소망의 빛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동시에 이방을 비추는 빛입니다. 죄인들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을 사랑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 사랑의 사건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의 몸을 통해 오신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7:14) 이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최고 선물은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메시아


두번째 단락은 메시아의탄생 장소에 대한 것입니다. 4절에서 7절입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올라갑니다. 이 일 또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일의 성취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 오리니 (5:2-3)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입니다. 다윗 왕가의 고향입니다. 요한 복음 741절과 42절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은 이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메시아가 어떻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고 질문할 때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면서 논쟁을 합니다. (7:42)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다윗 왕 같은 위대한 왕으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미래의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가 태어난 장소를 오늘 4절이 이렇게 말해 줍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4-5) 베들레헴입니다. 이 베들레헴은 나오미의 고향이기도 하고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돌아와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예언의 약속대로 메시아 예수가 태어난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원래 여자는 호적하러 같이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이미 잉태한 사실을 천사를 통해 알게 된 요셉은 마리아를 혼자 남겨 두고 베들레헴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되어 자칫 손가락질과 율법의 정죄를 받을 수 있는 위험 속에 홀로 남겨 두고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려 깊고 친절한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호적 하러 올라온 많은 사람들 때문에 여관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통은 시작되어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데 출산할 마땅한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 까요? 아마 요셉은 급하고 당황한 마음에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고 상황을 설명하며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곳에서도 마땅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한 사람이 빈 곳이라고는 소와 말들이 머무는 외양간 밖에 없는 데 그곳이라도 좋다면 사용하라고 허락했습니다. 급하게 그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마리아가 아기를 낳습니다. 아들입니다. 바로 아기 예수입니다. 만유의 구세주 메시아 예수입니다. 거기 있을 때에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였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6-7)    


우리가 이렇게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옛날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기 예수의 탄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살피고 축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서 하나님의 정하신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이 되어 사람 속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바로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이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은 이제 다시 때가 되면 그 아들을 세상의 심판주로 보내실 것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역사 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마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은 저희에게 의문과 함께 깊은 감동을 줍니다.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7) 예수님의 잉태는 성령을 통한 기적적 사건이었지만 탄생의 모습은 다른 아기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곳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립니다. 성탄절이 되면 아이들의 연극 단골 메뉴가 바로 말구유에 놓인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그 말구유에 화려한 조명이 비취고 빛나는 장식물이 설치됩니다. 하지만 실제 마구간은 그렇게 주목받는 인기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목가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낭만의 장소가 아닙니다. 그곳은 춥고 냄새가 나는 더러운 곳입니다. 아무도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짐승들의 거처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오신 곳은 우리를 위해 자기를 스스로 낮추시고 비우신 자기 비하의 자리입니다. 마구간은 죄로 더럽고 냄새 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6-8)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낮아지시고 가난해 지신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순간 세상을 위한 메시아가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를 묵상해 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이 겸손의 왕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나요? 성탄 선물을 받을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부풀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긴 휴가를 즐길 것을 생각하면서 기대에 벅차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모실 공간은 어떠신지요? 그가 낮은 자리로 오신 것은 우리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가난 가운데 오신 것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예수님이 태어날 그 때에 베들레헴에 어찌 방이 없었겠습니까? 단지 그 방을 차지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방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 드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그렇게 냉정하고 무정하면 안되었습니다. 설사 자기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막 출산하려는 위기에 처한 산모에게 방 하나 양보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모두가 자기 기득권을 챙기며 자신들을 위해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외면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의 정신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모른다 하더라도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어 주고 주변을 돌아보며 돌보고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의 생일인 것은 알지만 휴가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휴가 대목을 보지만 절대로 장사를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탄 보너스는 받지만 절대로 그분께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선물은 주고 받지만 나눔은 베풀 수 없습니다. 예수님 태어나시던 그때 베들레헴의 그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하지만 절망하거나 미안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책망하려 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성탄의 즐거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다고 탓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런 우리의 모습 때문에 메시아 예수께서 낮은 곳으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 당시의 매몰찬 유대인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그들이나 우리들의 현주소를 이렇게 간파하고 선포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0-12)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강보에 쌓여 말구유에 누이신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향하여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이해하고 다가올 수 있도록 상대방처럼 되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유명한 요한 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적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메시아의 첫번째 오심을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완성된 약속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두번째 약속도 이루시고 성취하실 것입니다. 장차 완성될 약속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흰옷 입은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절입니다. 바울 사도가 권면합니다.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 15:58) 첫번째 오신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임하신 은혜의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메시아는 심판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재림의 예수님이십니다. 처음 오신 메시아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아무도 몰랐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천사장의 나팔과 함께 모두가 알게 오실 것입니다. 이 심판의 메시아를 준비하는 믿음의 성도들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는 아무리 바쁘고 분주해도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분을 모시는 겸손한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휴가도, 돈도, 선물도, 그리고 편리와 안락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저희 모두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을 위한 영적 공간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실 빈 자리를 마련하고 그분을 삶의 주인이요 구세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처럼 낮아지지 않으면 그분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분처럼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그분을 보실 수 없습니다. 그분처럼 겸손해 지지 않으면 그분을 결코 모실 수 없습니다. 그분처럼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분을 진실로 모실 수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이 예수님을 다시 저와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자리에 모시는 은혜의 계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14 Cormiston Ave, Concord NSW 2137 | Sydney | Australia TEL : 02 9743-1444
Copyright ⓒ 시드니안디옥장로교회 All rights rese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