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 만난 하나님

재난속에 만난 하나님

(요엘 2:1-32)

들어가는 말

선교를 가기 위해 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않게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비행기 출발시간 전에 도착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거의 늦을 게 확실했습니다. 큰 일 난것입니다. 저가 항공을 예약했기 때문에 보상받을 길도 없습니다. 그래도 허겁지겁 최선을 다해 출국장을 향해 뛰어 갑니다. 직원에게 표를 보여줍니다. 직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합니다. “It’s not too late, sir.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가슴을 채우고 있던 염려와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감사합니다라는 고백과 탄성이 솟구쳐 나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이 많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처럼 마음에 안도와 위로를 주는 말도 없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목적하고 있는 곳을 향해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입니까? 인생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It’s not too late.’ 믿음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까? 회개하고 돌아서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새로운 출발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베풀지 못해 가슴이 아프십니까? 아직도 용서해 줄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하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습니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감사할 기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섬기기에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관계를 회복을 위해 먼저 다가가는데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격려하고 위로할 기회가 아직도 있습니다. 여러분, 늦지 않았습니다. It is never too late to strengthen the foundation of faith. There is always time. With faith in the Savior, you can repent and plead for forgiveness. There is someone you can forgive. There is someone you can thank. There is someone you can serve and lift. You can do it wherever you are and however alone and deserted you may feel.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기회가 있다. 여러분, 스스로 가슴을 치며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대와 같은 메뚜기 떼(2:1-11)

본문1절을 보면 마치 전쟁상황이 발생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끊임없이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경고의 사이렌이 울리면서 방공호로 급히 피하라는 방송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는 다 죽었다고 생각하며 얼굴이 창백해져서 혼란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게다가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운 칠흑 같은 밤인데 구름까지 끼어 달빛도 별빛도 한 점 새어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먼 곳 산 너머에는 무엇인가 불빛의 광휘가 하늘을 밝히며 점점 환하게 다가오는데 굉음을 동반하고 땅이 흔들리듯 진동합니다. 엄청난 파멸의 군대가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엄청난 대군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포탄들이 날아오는 데 포탄이 떨어지는 곳마다 불이 일어나고 집들과 건물들을 태웁니다. 그토록 비옥하고 기름지던 밭과 논들이 불에 타서 폐허처럼 변해 버립니다. 이곳 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아비규환의 절규가 불타는 도시를 더욱 처참하게 만듭니다. 그 짓밟는 기세와 힘이 얼마나 철저하고 드세던지 그것을 피한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도 그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경고음과 함께 여호와의 날이 임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여호와의 날을 묘사하는 데 이 날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재난의 날입니다. 이미 시작된 재난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절부터 11절에는 이 재난을 불러오는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을 더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전율스러운 위세요 철저한 파괴의 모습입니다. 놀라운 것은 본문의 기자인 요엘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을 너무도 자세하게 바라보며 자신을 객관화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난의 실행자들인 군대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 재난을 당하는 백성의 모습도 묘사합니다. 질서정연하고 용맹스런 특공대 같은 재난 실행자들과 그 앞에 낯빛이 하얗게 질린 백성들을 기록합니다. 재난의 참담함과 철저함을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게 실감나게 느끼도록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릴 정도의 처참한 종말의 모습입니다.

 

자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나는 군대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 1장에서 이미 만나 본 이스라엘이 경험한 메뚜기 떼의 습격을 말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고 만만해 보이는 곤충이 본문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묵시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메뚜기떼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하늘을 덮으며 해와 달의 빛을 가리고 낯을 밤처럼 어둡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인간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끌어안고 있던 모든 것을 창졸간에 초토화시킨 주인공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단순히 메뚜기 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지휘하시는 여호와의 군대였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제하시고 그것을 마음대로 운행하시고 사용하시는 여호와의 손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다 같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화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본문의 요엘은 이 자연의 군대를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지를 서슴없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지목합니다. 곡식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메뚜기떼 속에서 진노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온 땅을 뒤덮는 메뚜기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패역함에 극단적으로 분노하시며 심판의 지휘를 하시는 온 우주의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는 것을 영적 혜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정황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바른 영성의 사람은 창조속에서 창조주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매한 사람은 창조속에서 그 창조주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그 창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죄를 범합니다.  

본문의 예언자 요엘은 역사와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만 지닌 것이 아니고 그 현실을 넘어 배후에 서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자기가 속한 시대의 영적위치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 그 자체때문에 진짜 인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도 제대로 직시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현실을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화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2:11) 너희 삶의 재앙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영적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을 재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을 찢어라.(2:12-16)

사실 현실 자체만을 보면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미 재앙은 임했고 그 정도는 참담할 정도로 극심합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망연자실, 속수무책의 상황이지만 한 가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회개라는 길입니다. 철저하고 진지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길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2-14절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 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는냐?"(2:12-14) 지금이야 말로 회개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냥 형식적 회개가 아니라 철저하고 진실한 회개의 때라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현재의 상황이 자기 책임이라는 고백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14절에는 히브리어로 회개에 해당하는 "슈브"라는 단어가 각 절마다 한 번씩 세 번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하며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부터 고치자! 겉으로가 아니라 내면에서 실제로 깊이 뉘우치고 여호와께 돌아오자.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본심이 아니시다. 지금 임한 현실적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뉘우쳐 돌아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짓이요, 사랑의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축복은 회복되어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철저한 회개를 통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재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개를 한다 해도 철저하게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 책임이 아닌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변명과 변호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철저하게 회개함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보통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철저하게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회개마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겸손하게 나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회개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15-17절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2:15-17)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공동체성입니다. 이스라엘은 운명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즐거움도 공동체를 위해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거룩한 금식일을 선포하고 성회로 모여야합니다. 이 모임에는 남녀노소가 불문입니다. 백성전체가 참여합니다. 장로, 즉 연장자도 나와 금식하며 성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도 나와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신혼의 꿈과 달콤함에 젖어 있는 신랑과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와 함께 영적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물론 참여해서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공동체에 재앙이 임할 때, 가장 확실한 처방은 이렇게 함께 성회로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함께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런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이 이런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국가 공동체가 이런 영적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돌아서십니다. 재앙을 돌이켜 축복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희망은 회개와 돌아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못되면 내가 무엇인가 방법이 잘 못되었는지를 점검합니다. 내가 노력을 덜 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합니다. 자금이 달려서 그렇고 인간관계를 잘못 맺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운이 나쁘고 시기가 안 좋은 것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회복은 철저한 영적 점검이요 돌아섬인 회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ㅇ낳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응답(18-27)

이렇게 진실하고 철저한 회개가 선행될 때 하나님의 응답이 뒤따릅니다. 18절에서 27절입니다. 여기에 예언서의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요엘의 예언은 재앙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재앙에 이어질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심판을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그 심판 뒤에 주어지는 구원에 대한 약속 때문입니다. 심판을 그렇게 용기 있게 선포하는 이유는 심판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긍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백성에 대한 구원이 하나님의 최종적 목표라는 확신 때문인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변하고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를 촉구한 요엘이 18절 이하에서 여호와의 응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2:18) 이스라엘이 가진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습니다. 이 신앙의 본질이 지켜지는 데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배교와 우상숭배를 함으로 영적간음에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간음이라는 관계의 파괴가 오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하는데 그것을 돌이키는 유일한 길은 바로 회개입니다. 그때 언약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20절과 24절에서 27절을 보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응답이 주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메뚜기 재앙은로 땅이 말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바닥이 드러났었습니다.(1:10) 하지만 회개 후 하나님의 응답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드러납니다. 20절에서는 자연재앙이든 이방민족에 의한 침략이든 자기 백성의 피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영적교훈을 한 가지 얻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피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짜 관심은 그들이 재앙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여호와의 가슴을 아프게 해도 그분은 그들 가운데 계시고 기다리셨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심판하고 징계하실 때도 그들을 바라보시고 돌아오기를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며 돌아서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는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외면하고 돌아선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어떤 고난가운데 있더라도 돌아서면 바로 그곳에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방황하고 재난을 경험해도 그 징계의 한가운데 나를 바라보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기만 하면 재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고 기뻐하는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 27절이 증거합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2:27) 언제나 이스라엘 중에 함께 하시는 여호와, 여기에 진정한 소망의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의 이름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계시도다.' 인 것입니다. 여호와 천지를 지으신 만왕의 왕,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알고 확증하며 얻는 기쁨,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분께 올려드릴 찬양이고 경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외칩니다. 21절입니다.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음이로다."(2:21) 재난 가운데에도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기다리시고 복을 분비하셨다가 돌아서기만 하면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28-32)

마지막으로 28절에서 32절은 다른 선지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심판과 회복을 넘어서는 예상도 못한 엄청난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세 연으로 나눠지는데 첫째28절과 29절에서는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0절과 31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온 세상에 나타낼 때가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2절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축복을 온 세상도 누리게 될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이 만민에게 부어지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과거에는 일시적으로(11:29, 12) 또는 직분자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진(모세, 오홀리압과 브사렐, 제사장등) 성령이 모든 백성에게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옛 구속사에서 인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저주가 풀리고 다시 축복의 원래 역사가 회복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인간적인 구별이나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을 남녀노소 남녀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여호와의 날에 임할 축복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날이 오면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놀라운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30절과 31절입니다. 하늘과 땅이 그것을 나타내고 해와 달이 그럴 것입니다. 피와 불과 연기기둥으로 나타나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이스라엘과 유다만 경험했던 심판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종말적으로 임하게 될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직전에 나타는 현상이 될 것입니다. 우주에 임할 총체적인 대 파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6 2절에 기록된 대로 이방과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호흡이 있는자마다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둔 우주가 여호와의 능력과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가는 말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소망이 선포됩니다. 바로32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32) 여기에서는 세 가지 내용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자기의 언약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섬기는 것 외에는 다른 구원의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체적인 도피처는 언약의 역사에서 핵심이 되는 시온산, 즉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품안 예수 그리스도만이 종말론적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희망의 탈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남은 자 중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서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정죄와 심판, 그리고 소망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므로 정죄를 선언하시는 하나님도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도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여호와의 품으로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재난을 경험할 때 그 가운데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점검하고 무엇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진노를 불러 일으켰는지를 생각하고 돌이켜 회개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의 축복을 새롭게 하시는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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