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목자시니

여호와는 목자시니

(시편 23:1-6)

주일 낮 예배 설교

들어가는 말

이제까지 살아 온 지난 날을 뒤돌아 보면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저 쉽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지!” 라는 표현을 해 왔는데 그 표현이 요즈음에는 더 절실하게 실제적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뒤돌아 보면 젊은 시절에는 철이 없어서 인생을 잘 반추해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초점을 엉뚱한데 두고 산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인간적으로 후회와 반성을 하고 새로운 결심과 더불어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진정한 뒤돌아봄을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나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분이 내 삶의 중심과 기준과 주제가 된 삶을 살아온 후로는 지난 날을 뒤돌아보는 방법도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묻는 질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질문이 한층 더 깊어졌다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피상적이고 현상적인 차원에서 훨씬 더 깊이 들어갔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다. 인생의 본질을 다루는 바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결핍을 느끼는 존재

그런 시각에서 지난 날들을 다시 반추해 봅니다. 그리고 나를 감싸고 돌아가는 현재의 세상을 둘러보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금방 눈에 드러나고 즉시 느껴지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바로 결핍입니다. 부족함입니다. 무언가 모자란 2%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간절하고 심각한 채워지지 않는 빈공간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결핍입니다. 공동체마다 느끼는 모자람입니다. 개인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감출 수 없는 부족함입니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빈 항아리처럼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안타깝게 만듭니다. 꽉 채워진 삶을 살고 싶은 게 인간의 원초적 욕구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추구하는 게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만족을 경험하지 못한 쓸쓸한 인생들이 도처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돌아가는 현재 세계의 모습을 관찰해보십시오.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살펴보십시오. 그런 큰 그림을 떠나 시야를 좁혀 호주 교민들의 삶을 살펴 보십시오. 관심을 더 가까운 곳으로 돌려 여러분들의 직장과 가정을 살펴보십시오.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아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십시오. 부모님의 내면을 살펴보고 자녀들의 속마음을 관찰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정직한 눈으로 여러분 자신의 내면세계를 직시해 보십시오. 만족스러우십니까? 보이지 않으십니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결핍과 부족의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채워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습니까? 때로는 소리쳐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흐느껴 울며 영혼이 절규합니다. 소리없는 갈구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결핍된 것입니까? 무엇이 모자란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 인생은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시간 여러분들이 한 번 열거해 보십시오. 무엇이 부족한지 나열해 보십시다. 재정 (물질), 사랑 (애정), 관심, 능력, 리더십 (지도력), 정직성, 멘토링 (코칭), 보호의 결핍, 건강, 은혜, 믿음, ….. 물론 사람마다 결핍의 내용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결핍이나 부족을 느끼지 않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부족을 느끼고 결핍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 결핍을 채울 수 있을까?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를 해야합니다. 어디에서 이런 결핍을 채울 수 있을까요? 무엇이 만족을 줄까요? 누가 이 부족과 결핍을 채워줄까요?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을 새로 뽑으면 우리의 조국 한국사회의 저 처절한 결핍과 부족이 채워질까요? 가난한 사람은 물질이 채워지면 모든 게 채워지는 것일까요? 재정의 결핍을 느끼던 사람이 재정이 채워지면 그 영혼까지도 만족하게 되나요? 다시 목마르지 않을까요? 다시 배고프지 않을까요? 결핍된 애정과 사랑의 항아리는 누가 채워주나요? 남자 친구가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되나요? 여자 친구가 생기면 저절로 행복해지나요? 남자 친구가 생기고 여자 친구가 생긴 후 더 고민하고 삶이 더 복잡해 진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결혼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십니까? 상처입고 방황하는자녀의 영혼을 부모가 치유해 줄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나요? 사랑해 준다고 사랑하는 데 더 멀리 도망가고 더 방황하는 자녀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 아닌가요? 노년을 맞이해서 쓸쓸함과 외로움가운데 인생의 황혼을 살아가는 부모님의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 만족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 정답을 알고 계신 분 계십니까? 어디에서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오늘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속에 정답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정답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 정답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함께 읽은 시편 23편입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주저함 없이 담대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I lack nothing.” 1절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세상에 누가 감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시인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그런 고백에는 전제조건이 따라 붙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The Lord is my shepherd.”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시인 다윗의 인생이 언제나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고 순풍에 돛을 단듯한 우호적인 모습으로 펼쳐졌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어려움이 없었거나 적대적인 환경이나 악조건이 없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낙담과 절망되는 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위기의 순간과 쓰러질 것 같은 고난의 순간이 없었던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입니다. 여호와가 다윗에게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낙담될 때가 있었지만 여호와가 자기에게 목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 같았던 게 그의 인생의 여정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가 다윗의 목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원수와 대적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화와가 목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부족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있게 하는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다윗의 개인적 관계입니다. 다윗이 그 개인적인 관계 가운데 누린 경험적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라는 일인칭 소유격이 중요합니다. 다른 그 누구의 목자가 아닌 바로 나의 목자입니다. 여호와가 자기 개인의 목자임을 고백하는 그 고백속에 자신이 그 목자이신 여호와에게 절대 의존적인 한 마리 양임을 인정합니다. 목자되신 여호와 없이는 양인 자기에게 만족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부족과 결핍을 느끼지 않는 충만한 인생의 이유가 바로 목자와 양의 관계속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에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다윗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이 되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양들이 얼마나 목자에게 의존적인 존재인지를 실제 자기들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로서 그들은 양이라는 존재의 실제 모습과 그들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고 밀접한지를 목자없는 양의 모습은 결핍과 부족을 대변하는 대표적 이미지였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실 때에 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 9:36) 목자 없는 양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길을 잃고 방황하고 이리저리 헤매입니다. 보호받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를 말합니다. 가시에 얽히거나 구덩이에 빠져도 안타까운 울음소리만 낼 뿐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둘 중 한가지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굶어 죽거나 못된 짐승에게 잡혀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목자 없는 양의 모습입니다. 이런 양의 모습과 그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이렇게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8:12-13) 이게 바로 길잃은 양의 모습이고 그것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사랑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게 동물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 18:14) 바로 부족과 결핍을 경험하며 방황하는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바로 절대적 필요와 결핍 상태에 처해 방황하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오늘 다윗은 본문의 시편을 통해 목동이었던 자기의 경험을 회상하며 목가적이며 서정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목자와 양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속에 엄청난 인생의 진리를 전해 주고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다만 한줌 흙으로 빛어진 인생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되어야만 하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언어속에 아무도 부정할 수없고 반박할 수 없는 부족과 결핍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영원한 목자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때 어떤 모습의 인생을 살게 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결핍과 부족, 모자람과 불완전의 삶인 것을 설파합니다. 영혼은 낙망가운데 소생하지 못합니다.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지 알지 못하고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없는 삶의 음침한 골짜기를 아무런 보호와 보장없이 홀로 걸어야 합니다. 원수를 만나도 진정한 도움의 손길이 없는 대책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혼의 문제에서 경제, 현실과 영원의 문제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는 인생

그렇다면 다윗처럼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시는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윗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자기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차분하게 잘 설명해 줍니다. 첫째 2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하나님, 쉼과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풀밭에 눞는 안식은 단지 육체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로 인해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내면세계가 질서가 잡힌 참된 고요와 평화가 임한 상태를 말합니다. 인생의 바다에는 여전히 폭풍우가 몰아 치고 거친파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되시는 여호와와의 관계에서 오는 확신때문에 그 가운데 누리는 내적 안정과 고요를 말합니다.무력한 탈진이 아니라 고요가운데 경험하는 영적 자신감속에 누리는 안식과 쉼을 말합니다. 내적 능력이 함께 하는 안식과 쉼입니다.

본절에서 주어지는 이 안식과 쉼은 우리 이민자들에게 가장 결핍되기 쉬운 부분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멈추면 불안해 합니다. 쉼과 안식을 퇴보나 정지로 생각합니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안절부절합니다. 무언가 손해를 보는 줄로 알고 경쟁에서 지는 줄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안에 쉬는 안식은 재충전입니다. 세상에서 고갈된 빈 탱크를 채우는 재충만의 기회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여러분의 영혼에게 쉼과 안식을 주십시오. 여호와께 맡기고 기대십시오. 그분안에서 쉬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런 쉼과 안식을 통해 여러분의 영혼은 소생합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 여호와가 여러분 속에서 행하시는 일은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일입니다.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여호와, He refreshes my soul. 영혼은 지치기 쉽습니다. 영혼은 낙망하기 쉽습니다. 영혼은 상처입기 쉽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쉽게 좌절합니다. 쉽게 낙망합니다. 쉽게 상처입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혼의 상처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여러분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11: 28-30) 여러분,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을 때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재충전이 이루어지니다.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이 분명하고 쉬운 원리를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삶에 잘 적용하셔서 예수님 안에서 재충전과 새 힘을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두번째는 위기가운데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생의 여정은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처럼 두려운 여행길일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시험이 닥쳐옵니다. 유혹이 우리를 멸망의 길로 현혹시키기도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상실할 수도 있고 예기치 않은 경제적 위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원만하던 관계가 깨어질수도 있고 그 관계의 파괴가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그런 인생의 여정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목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를 휘두르며 이리와 늑대를 쫓아 버리듯 여호와께서 그렇게 다윗을 지키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 함께 하시는 인생은 다른 것입니다.

목자가 함께 걸어가며 지키고 보호하는 양과 홀로 들판에 남겨진 양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목자되신 여호와와 양인 다윗의 관계의 모습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여호와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여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하였노라 누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은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라( 41:8-13)

여러분, 이 여호와가 바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목자가 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23:5) 내 삶을 역전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도저히 내 능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을 반전시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패배자의 인생을 승리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양이 뛰어나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목자가 그 막대기와 지팡이로 대적들을 다루시며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양이 상을 받아 누리고 잔이 넘치는 풍요를 경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과 함께 하는 목자덕택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가장 먼저 가장 애를 쓰며 해야 하는 일은 목자곁으로 파고 드는 것입니다. 절대로 목자 곁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호와의 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그렇게 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안되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붙어 있는 그 관계 자체가 인생의 열매를 맺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1,4)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 나무에서 분리되면 아무런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이 목자와 분리되어서는 결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적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결코 스스로 어떤 승리도 쟁취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기록되는 감격어린 다윗의 고백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목자되시는 여호와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살아가는 다윗의 삶 가운데 임한 승리가 보이십니까? 그에게 임한 잔이 넘치는 풍요가 느껴지십니까? 모든 결핍과 부족이 채워지고 넘치는 삶이 느껴지십니까? 모자람을 넘어 주변으로 흘러가는 축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삶이 이와 같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경험한 자의 미래의 삶

그렇다면 이런 사람의 삶은 미래에 어떻게 펼쳐져야 마땅할까요? 오늘 다윗이 보여줍니다. 6절입니다. 다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23:6) 다윗은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바로 현재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미래에도 함께 하실 하나님으로 확신합니다. 이런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 때 우리는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가 사라집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체면을 걸듯 긍정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처럼 연약한 존재인 자신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신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삶을 통해 경험한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경험되어진 하나님위에 미래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이 이런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서원을 한가지 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분의 함께 하심입니다. 이제까지 묵상해 본 목자가 양과 함께 하는 것이 양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속에 살아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두 가지를 사모해야 합니다. 첫번째는 그분이 나와 함께 해주시는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그분의 임재속으로 파고드는 그분을 사모하는 목마름의 자세입니다. 이 두가지가 함께 할 때 강력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바로 다윗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윗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서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개인적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밖으로 벗어나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마치 목자가 이미 자기 곁에 함께 함에도 불구하고 그 품으로 파들며 기대는 양과 같습니다. 이런 관계가 바로 실제적으로 삶에서 경험하고 누렸던 다윗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

나가는 말    

여러분, 우리는 결핍으로 가득찬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부족을 느끼는 사회와 현실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무엇인가 모자란다고 목마름을 호소하고 여전히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때로는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큰 외침은 내면의 영혼속에서 엄청난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삶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사회는 바른 지도자와 지도력의 결핍으로 전체가 불행의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결핍으로 아픈 가슴을 끌어 안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부족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연약해서 인생을 어두움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깨어진 관계로 인해 깊은 상실과 아픔을 갖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이런 결핍과 부족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지요?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를 여러분 개인의 목자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탁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복된 고백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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