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할 뿐 아니라 책임지는 사랑
우리는 모두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고 받아 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우리를 대하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내 문제와 내 연약에 공감하며 동정해 주고 함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불충분합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지 어떤 슬픔과 아픔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증언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한 소년이 마을 길을 지나가다가 이런 팻말을 보았습니다. “강아지 사실 분, Puppies for sale.”
소년은 그 집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인이 나오자 “강아지 한 마리에 얼마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100불이란다.” 소년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만한 돈은 그 소년에게 매우 큰 액수였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를 좀 보면 안될까요?” 주인은 안을 향해 어미개의 이름을 부르며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어미개가 문간으로 나오자 귀엽고 앙증맞은 네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습니다. 그 뒤에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애처롭게 킹킹대며 뒤쳐져 애써 따라오는 또 다른 한 마리의 강아지가 보였습니다. “저 강아지는 왜 저래요, 아저씨?” “글쎄, 저 강아지는 저렇게 불구로 태어났구나. 동물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엉치뼈가 잘못되어 고칠 수 없단다. 평생 저렇게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구나.”
“아저씨, 저 강아지 제가 가져 가고 매 주 조금씩 강아지 값을 갚아 드리면 안될까요?” 강아지 주인은 소년이 이렇게 부탁하자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며 다시 설명을 했습니다. “네가 내 말을 잘못 알아 들은 것 같구나. 저 강아지는 평생 다른 강아지들처럼 뛰지도 못할 뿐 아니라 똑바로 걷지도 못할 것이라고 의사가 얘기했단다. 영원히 절름발이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하필이면 왜 저런 강아지를 갖고 싶어하는 거냐?” 소년은 대답하는 대신 팔을 뻗어 자기 한 다리에서 바지를 걸어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나타난 것은 사람의 다리가 아니라 쇠로 만든 의족이었습니다. “저도 잘 걷지 못해요. 더군다나 뛰는 것은 제게 평생 불가능하지요.” 소년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 강아지는 매일매일 정말 많은 이해와 사랑이 필요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절름발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강아지 주인은 놀란 듯 먹먹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저 강아지는 이제 네 거다. 나는 네가 저 강아지를 가장 잘 돌보아 줄 사람인 것을 분명히 알겠구나.”
충분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동정하시고 이해하시는 모습과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연약을 입으시고 나처럼 되신 나의 아픔과 고통을 다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야 하는 나를 자신의 피 값으로 사셔서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나의 연약과 실패, 아픔과 슬픔을 아시고 동정하실 뿐 아니라 언제고 내 곁에서 나를 실제적으로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지어다.” (히 4:16) 내가 믿음으로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기도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진짜 사랑은 동정할 뿐 아니라 책임을 집니다. 놀라운 예수님의 사람, 이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계십니까?
정기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