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을 쏟고 관계를 얻다

샘물을 쏟고 관계를 얻다.

자본주의의 두 축은 돈과 사람이 아니다. 효우성과 생산성이다.
효율적이라면 사람은 얼마든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
조직에서는 '일'과 '관계' 중 택일하라면 당연히 일이다. 조직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 편이 합당하다. 결과는 어떤가?
생산과 효율의 극대화는 자본 수익의 극대화를 이루었지만 인간소외 극대화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사람 냄새가 그립다.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깊은 심성과 인격에 목이 마르다.

사무엘 하 23장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목이 말랐다.
"저기 내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은 정말 깨끗하고 시원한테... 그 우물물 한 그릇 들이켜고 싶네" 다윗 왕의 말을 들은 세 용사가 목숨 걸고 적진에 잠입해서 우물물을 길어왔다.

"너희가 정녕 넋두리 같은 내 말 때문에 목숨 걸고 이 물을 떠왔다는 말이냐? 나는 이 샘물 못 마신다. 너희 피와 같은 것을 어떻게 내가 마실 수 있나?" 다윗은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린다.

세부하는 그 사랑에 목이 멘다. 다윗은 샘물을 쏟고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훗날 이들은 통일 이스라엘의 가장 충성스러운 장수가 되었다.

삼국지에 비슷한 애기가 있다. 조자룡은 적진에 남겨진 유비의 아들 아두를 필사적으로 구출한다. 이때 조자룡이 죽인, 조조의 이름있는 장수가 50명 이른다. 유비는 조자룡이 품에 안고 온 아두를 내친다. "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내 귀중한 장수를 잃을 뻔 했구나!" 조자룡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낀다. "비록 간과 뇌를 땅에 쏟는다 해도 저를 알아주신 주공의 은혜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일의 가치보다 사람의 가치를 앞세우는 존재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나르 버려 남을 얻는 사람이다.
다윗이 우물물을 쏟고 관계를 얻었듯, 땅의 영광을 하찮게 여기고 하늘의 영광을 주저 없이 택하는 사람이다. 분명 손해다.
분명 어리석어 보인다. 실제 그럴까? 아니다. 시간이 다르다.

땅의 시간에 올려놓고 저중질하면 분명 손해가 맞다. 그러나 영원의 시간에 올려서 달면 무게는 언제나 손해 보는 쪽이 더 나간다. 그래서 세상의 계산법은 언제나 소탐대실이다.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것을 모르니 어찌할꼬! 생명을 잃으면 천하를 얻어도 아무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니 도대체 어찌할꼬! 

"주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부러워하는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소서."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왜 성령인가? Why Holy Spirit'등의 저자)
생명의 삶 2017 5월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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