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May your word to me be fulfilled.)
(누가 복음 1:26-38; Luke 1:26-38)
2021년 11월 21일 (주일
설교)
들어가는 말
본문 26절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단락은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수태 소식을 전해 주었던 가브리엘 천사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일한 천사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한 집을 방문합니다. 다윗의 자손 중 한 청년인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름이 밝혀진 몇 안되는 천사 중
하나입니다. 천사가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건의 주인공인 천사도 아니고 사가랴나 마리아도 아닙니다. 천사 가브리엘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가브레엘 천사는 마리아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대해 소식을 줍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특별한 정체성에 대해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옛적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4세기, 약 400년동안 말씀이 없었습니다. 오랜 침묵끝에 다시 말씀하시는 데 이제는
선지자를 통하지 않고 친히 말씀하십니다. 바로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증거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지난번 말씀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말씀하신다는
말은 계시하신다는 말입니다.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것은 말 그대로 대화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계시입니다. 다시 말하면
숨겨진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감추어져 있던 영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는 이미 약속되었던 것을 다시 말씀하시며 확인시켜 주십니다. 또는
계시의 성취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그런 약속의 성취에 대한 말씀입니다.
조용한 말씀의 성취
오늘 본문은 이런 계시의 본질과 독특성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 성취 사건은 매우 조용히 이루어집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영원하고 우주적인 사건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집니다. 산골 마을의
가녀린 한 처녀를 통해 성취됩니다. 이 처녀가 살던 마을 나사렛은 그 당시 영적으로 평판도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하면 전도하며 곧바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냐”고 반문했습니다. (요 1:44-46)
하나님은 그런 곳을 당신의 가장 귀중한 말씀의 성취의
장소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무명의 순박한 한 산골 처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 예상밖의 선택은 그 동네를 위한 것도 그 처녀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온 세상 온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 낮고 천한 사람들을 포함한 전 인류의 구주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계시된
사건의 내용입니다. 이를 위해 연약한 산골 처녀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이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6-28)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누가복음의 특징 중
하나가 소외 당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입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소망의 근거입니다. 이런 관심과 은혜는
본문의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모습속에서도 증명이 됩니다. 저는 부족하고
결점이 많은 여러분과 제 삶 가운데에도 이런 하나님 말씀의 주권적 성취가 이루지는 역사가 경험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슨 말씀이 성취된 것일까?
자,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말씀이 성취된 것일까요? 우리가 지금 대하고 있는 본문은 인간의 역사속으로 가만히 들어
오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의 잉태소식을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주인공이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 세상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의 예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왕의 오심을 예비할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에 이어 만왕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의 수태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첫번째 절인 26절을 보면 “여섯째 달에” 라고 시작을 합니다. 앞에 있었던 사건과의 시간적 연결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앞에 있었던 사건은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잉태에 관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이 성취되어 엘리사벳이
임신 한지 6개월이 지난 후에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
첫번째 사건의 성취는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자녀를 얻을 수 없는 노부부에게 잉태의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6개월 후에 고지된 오늘 본문의 사건은 더 놀랍습니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입니다. 31절입니다.
그냥 우스겟소리나 황당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 본 누가 복음 1장 1절을 보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누가는 시작을 합니다. 그들
가운데 실제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인간의 역사속에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바로 예수 잉태와 탄생에 관한 기록입니다.
본문 성경의 기록은 말씀의 성취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말씀의 성취와 함께 도래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아니하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랴” 민수기 23장
19절 말씀입니다. 시간과 장소까지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고
누구를 써서 일을 성취하실지까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놀라운
우주적 사건은 참으로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살아가시는 삶의 현장과 여러분들의 인생의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공간이되고 시간이
되고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실 메시아의 특징
오늘 본문은 처녀가 잉태하여 낳게 될 메시아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성령에 의해 잉태될 것입니다. 35절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 되는 아기입니다. 지난 주에 누가 복음의 특징 중 하나가 성령의 사역하심을 강조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놀라운 소식을 접한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4절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천사의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왜 중요할까요? 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담으로 인해
모든 인류에게 전염된 죄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온전한 인간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이신 동시에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속에 구원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인성으로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의 사역을 완성하십니다. 죄없이
태어나신 예수님은 무덤이 영원히 가둘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부활시키심으로 잠자는 모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기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메시아 예수님의 두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32절입니다. 이런 놀라운 메시아의 특징은 마리아가 기왕 아들을 주신다면 내 아들을 이런 인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하나님에 의해 주도적으로 세워질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오래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the
government)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Wonderful Counsellor),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Mighty God),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Everlasting Father), 평강의 왕이라 (Prince of
Peace)할 것이라” (사 9:6) 장차 오실 메시아가 왕이 되어 영원히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이제 이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세상
나라들 가운데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을 폐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들
가운데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현재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가운데 서서히 자라가고 커져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모든 왕들과 권세자들과 모든
민족이 그 왕을 경배하게 됩니다. 현재 세상은 이 지극히 높으신 자요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섬기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 가운데
우뚝 서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영원토록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완전한 공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하늘나라입니다.
이 메시아의 세번째 특징은 다윗의 왕위를 재건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하 7장 12절에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위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이룰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그 나라를 세울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의 주인공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오실 메시아 예수입니다. 이사야가 이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여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이사야 9장 7절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사렛의 작고 연약한 처녀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것 같지만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실 만왕의 왕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천사를 통해 이런 계시가 주어지자 마리라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마리아가
놀란 것은 돌발적인 천사의 출현 때문만이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출현보다 더 깜짝 놀란 것은 그가
전한 소식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28절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문안입니다. 이런 인삿말에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리아에게 천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0-33절입니다.
마리아는 산골에 살고 있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성적인 처녀입니다. 이성을 가진 처녀라면 어떻게 이런 말씀을 듣고 생각도 없이 “아멘!”하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놀라고 질문하는 게 정상입니다. 이성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논리가 아닙니다. 이성을 너무 무시하거나 포기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참된 진리는 당연히 이성을 설득하고 이성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되었는데도 이성을 주장하며 고집을 피우는 것은 어리석은 아집입니다. 이런 태도도 경계해야
합니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합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요” 이런 이성적 질문을 하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대답을 해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시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지리라”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하면 사람의 능력과 이성을
넘어섭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믿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사건의 현장을 보여 주면 됩니다. 그런 능력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면
됩니다. 36절입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6절과 3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 준 것입니다. 이보다
더 친절하고 설득력있는 말씀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수없는 실수와 실패를 경험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런 정보분석과 판단을 통해 결정한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주식투자해서 부자가 안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놀음해서 잃을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혈액형을 가지고 성격 분석하고
인런 저런 통계를 참고해서 결혼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불합리하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증거를 대면 믿겠다고 말하지만 증거를 대도 믿지
않습니다. 기적을 보면 믿겠다고 말하지만 기적을 수없이 경험해도 믿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주면 믿겠다고 말하지만 부자가 되도 믿지 않습니다. 건강해지면
믿겠다고 말하지만 건강해지면 더 큰 죄를 짖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합리적이기 이전에 죄악되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를 보십시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함께 멸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합니다. 저는 시진핑이나 푸틴이나 바이든이 3차대전을 촉발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은 함께 멸망할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위험한 불장난을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고 싶어 안달입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 모든 인류가 함께
공멸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알면서도 절대로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공해 오염을 낮추지 않고 난개발 또는 자연파괴를 계속 자행합니다. 그게 소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성과 합리적 존재 이전에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시아가 처녀의 몸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죄없는 아기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가 즉시 대답합니다. 친족 엘리사벳의 경우를 알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합리적 판단은 신학을 공부하고나 대단한 지적 능력을 지니지 않아도 당연히 깨달아지고 수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오늘 본문 38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처녀의 몸에 잉태를 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간단한 논리를 누가 모르겠으면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요? 주어지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 판가름합니다. 말씀은 믿을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맏음의 능력은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가장 중요합니다. 순종하면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불순종하면 그 말씀의 능력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믿음과 믿음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논리가 아닙니다. 논리적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역사함으로 아기가 잉태되고 태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안 믿어지면 증거로 친족 엘리사벳의 경우를 보라는 것입니다. 임신
불가능한 노년에 아기를 갖고 벌써 6개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주어진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불신으로 귀를 막을 것이냐
입니다. 마리아는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 들을 때는 때때로 황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비이성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비합리적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과학적인 것이지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성을 안 따지는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한 근거를 제사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증거가 불충분해서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완고함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역사하는 미혹의 영에 의해 조종당하기 떄문입니다. 본인들은 이런 것들을 부정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으로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적인 판단의 결과에 따른 반응을
요구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자극해서 기분이나 좋게 하고 얄팍한 위로를 받게 해서 영적
최면을 거는 게 아닙니다. 믿고 순종함으로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믿고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 함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21)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먀 천사가 떠나니라” (눅 1:38) 마리아의 이 고백은 냉철한 이지적 결단에서 나온 대답이
아닙니다. 또는 영적 황홀경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 대답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는 어쩔 수 없어서 이를 악물고 하는 대답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주는 말에 가브리엘의 말대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감격한
것입니다. 설득된 게 아니라 은혜를 받고 믿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을 결단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기쁨에 넘쳐 자발적인 탄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뒤에 이어지는 말씀에 마리아 찬가가 나옵니다. 찬송은
터져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 영혼 깊은
곳에서 찬송이 흘러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런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순종으로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말씀에 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보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완전하게 깨닫거나 이해할 수없습니다. 오직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여러분들과 제 앞에는 두 가지 길만 남아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것이냐 아니면 믿지 못하고 불순종의 사람으로 살것이냐입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마리아처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