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직면하는 시험이기기

성도가 직면하는 시험 이기기

                                                                          (야고보서 1:1-4)

2015 1220 (주일 낮 예배)

 

들어가는 말

어떤 전도사님이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 방에 들어서서 짐을 정리하다가 사모님의 가방에서 조그만 통을 발견했다. 궁금해서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뭐요?" 그러자 사모님은 말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 열어보시면 안돼요, 알았죠!" 전도사님은 궁금했지만 워낙 완강하게 말리는 통에 알았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후 잊어버리고 세월이 20년이 흘러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20년간 목회하면서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하다가, 20년 전의 그 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이제는 20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괜찮겠지!" 하며 살짝 통을 열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현금 200만원과 계란 3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목사님은 사모님께 그 통을 열어 본 사실을 말하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요?" 사모님은 절대 열어보지 말랬는데 열어보았다고 원망하면서 마지못해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 말했습니다. "좋아요, 이제는 말씀을 드리죠, 당신이 저와 결혼 후에 교회에서 설교 하실 때, 제가 졸음이 오면 그 때마다 계란을 하나씩 모았어요" 그러자 목사님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래? 20년동안 내가 3번 밖에는 졸음이 오는 설교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200만원은 뭐지?" 그러자 사모님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동안 계란 판 돈 이예요"

정말 목사 시험 들게 하는 유머입니다. 졸 때 졸더라도 제 아내가200만원 저축이나 해 놓은 눈먼 돈이나 발견되면 이번 성탄이 더 큰 기쁨으로 충만 할 것 같습니다. 이 유머를 접한 다음에 부엌에 있는 통들과 아내 화장대 통들을 다 열어 보았는데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Joke입니다. 날씨가 더운데 제가 설교하는 동안 졸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시험에 들지 모릅니다. 이것도 Joke입니다. 여러분, 시험 좋아하세요? 세상에 시험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시험 싫어합니다. 시험 보는 것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을 시험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학생들 시험 보게 하고 채점해서 점수 주는 것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이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시험 들게 합니다. 바로 성도들에게도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시험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그 믿음을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탄생을 체험 한 후 지속적인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데 그것을 성화의 단계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로서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가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성도는 다양한 영적 장애물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장애물이 바로 시험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성도가 마주치게 되는 시험을 한 단어로 똑같이 번역한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 혼돈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잘 생각하면서 말씀을 읽고 맥락적으로 이해하면 금방 구분이 갑니다. 이 세가지 다른 단어로 표현되는 시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이 어떤 의미를 갖던 모든 시험이 성도를 더욱 성숙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도구들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시험을 잘 통과하면 복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험이라는 장애가 축복의 계단이 됩니다. 시험이 은혜를 경험하는 수단이 됩니다. 시험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으로 인해 시험 들지 마시고 모든 시험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오늘 묵상하는 야고보서를 기록한 말씀을 야고보 사도의 격려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입니다. 그냥 기쁘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닥쳐 올 때마다 기쁘게 끌어 안는 성숙한 성경적 영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험의 첫 번째 표현은 우리가 잘 아는 시험, 영어로 test입니다. 성도가 통과해야 하는 test라는 시험은 성도들을 더 성도답게 만드는 성숙을 이루는 영적 통과의례입니다. 창세기 22장에 기록되는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같은 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순종의 시험이었는데 아브라함은 통과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내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 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차지 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22:16-18) 이 축복의 내용을 따라 오늘 저와 여러분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 표현은 영어로 trials입니다. 한국말로 말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환란이나 어려움, 걱정과 근신, 삶의 고난과 같은 환란을 말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성경은 다양하게 처방을 내려 줍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을 겪고 난 뒤의 축복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5:3-4; 12:12; 1:12)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trials라는 영어로 표현되는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엄청난 축복이 주어집니다. 환란은 결국 소망을 새롭게 해줍니다. 환란을 통과하면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온전해 지고 굳건하게 되고 강하게 되고 터가 견고하게 됩니다. 다니엘이나 바울과 같은 분들이 겪었던 시험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복이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유혹, temptation을 말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받았던 유혹과 같은 것입니다. 성적 유혹입니다. 이 세상적 유혹을 통과한 요셉이 받아 누렸던 축복의 모습을 창세기 49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내년 2016년 우리 안디옥 교회의 표어인 이웃에게 생명과 축복을 전하는 교회의 주제 성구입니다. 우리 다 함께 따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웃에게 생명과 축복을 전하는 교회” “이웃에게 생명과 축복을 전하는 성도 이렇게 유혹을 이기고 나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복의 유통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오늘부터 묵상을 시작하는 야고보서의 저자는 야고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매우 흥미롭게 시작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야고보는 바로 예수님의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으로 피를 나눈 동생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리적 과정을 통해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피를 나눈 동생은 없습니다. 이후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이 있을 뿐입니다. 야고보가 바로 그런 동생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의 동생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자신의 이런 신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소개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지켜본 야고보도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단지 종에 불과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야고보 뿐 아니라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사도들 가운데에도 공통으로 고백했던 자기의 신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은 단순한 종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문화와 사회 제도적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어의 doulos에 해당하는 노예의 신분으로서의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자기의 생명과 존재가 주인에게 의탁된 자유의지를 꺾어버린 신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바쳐진 예수님의 처분에 모든 것이 달린 예속적 존재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겸손이 영적 성숙에서 오는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미숙하면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자신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숙해지면 오직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구세주에 대한 온전한 순종과 겸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적 충성과 자기 드림이 있습니다. 야고보의 모습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만 드러냅니까? 예수님 앞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노예와 같이 온전한 종으로의 충성되고 헌신적인 자세를 갖추고 살아갑니까? 그뿐 아니라 이 고백 속에는 신령한 자신감이 깊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종은 종이되 위대한 종인 것입니다. 창조주의 종이요, 구원자의 종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랬고 갈렙이 그랬습니다. 이사야가 그랬고 에레미야가 그랬습니다. 당신이 누구의 종이냐가 당신을 결정합니다. 야고보는 스스로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님의 종이라는 거룩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넘어 승리로

바로 시험을 넘어 승리로 전진하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가 다루는 시험이라는 주제는 유혹, temptation이 아니라 test 또는 trials를 말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 차에 부치고 다니는 범퍼 스티커가운데 이렇게 쓴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When life hands you a lemon, make lemonade.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거든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세요.” 그런 스티커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짓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해서 쓰리고 신 레몬 같은 인생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패배자들이 변하여 승리자가 되고 시험이 변하여 축복이 되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낙망을 넘어 소망을 노래하고 십자가를 너머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삶의 수레바퀴에 처참하게 깔려 고통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그 삶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돌려 운행하는 승리자로서의 역전을 노래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복음적 비밀을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성도의 삶에는 당연히 시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죄송하지만 오늘 본문을 영어로 보면 이렇습니다.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2절입니다. “If, 만약에라는 단어가 아니라 “whenever, 시험을 당할 때마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어려움과 시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현실은 예수님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선교 여행 중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 오던 바울 사도가 그곳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14:22)

여러분, 이런 환란과 고난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두 가지 특징적 경우가 있는 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죄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질병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일 수 있습니다. 절망이나 실패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에 겪는 환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4 2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인기 때문에 겪게 되는 환란에 대해 이렇게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13)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환란이나 시험에 아닙니다. 예수님이나 야고보, 바울이나 베드로의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바로 두 번째 핵심입니다. 시험과 환란이 당연히 있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담대 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믿음에 머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환란이 있느냐 고난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에 직면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징징대며 부정적으로 대하느냐 당당하게 긍정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나를 다듬고 성장시킬 거룩한 계단으로 받느냐 나를 넘어뜨리고 멸망시킬 장애물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담대히 앞을 향해 전진할 것이냐 두려움에 쌓여 그 자리에서 떨고 있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믿음으로 승리를 향해 돌진 할 것이냐 불신으로 패배자의 삶을 살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말씀에 의지하여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한 마디 영적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장애나 어려움은 돌아가는 우회로가 아닙니다. 인생의 시련과 시험은 여러분이 걸어야 할 인생길의 일부일 뿐입니다. Always, always remember that - adversity is not a detour. It is part of the path. 그 거친 일부에 해당하는 시련과 시험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십시오. 곧 끝이 납니다. 그 시험을 담대하게 맞이하십시오. 이기게 됩니다. 그 시련을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기왕 가는 길 즐겁고 경쾌하게 걸어가십시오. 영적으로 성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때론 장애도 만나고 실수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에 감사하십시오. 그 모든 것이 바로 여러분들을 성장시키는 선생님이 될 것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공부를 가르쳐 주고 난 다음에 시험을 봅니다. 그러나 인생은 시험을 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게 학교와 실제 인생의 차이입니다. 오늘 이후로 인생의 시험과 시련에 대한 태도를 바꾸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대로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담대 하십시오. 믿음으로 대처하십시오. 오히려 즐거워하십시오. 처음과 끝이 변함없이 태도의 문제입니다. 믿음과 긍정의 태도로 시험을 넘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또 다른 승리의 비결은 인내입니다. 인내로 보석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십시오.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우리가 아는 것은 시련은 믿음을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시험과 시련이 닥치기 전까지는 믿음의 진위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라고 말합니다. (벧전 1:7) 시련으로 연단되어 지지 않은 믿음은 견고하지 않습니다. 용광로를 거치지 않은 금이 쓸모 없듯이 시련과 시험을 통과해서 정화되지 않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쓰시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훈련이 운동선수를 진짜 운동 선수로 만들어 가듯이 시련과 시험이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진짜 믿음을 빚어냅니다. 우리는 모두 훈련이 힘들지만 유익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믿음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시험과 시련의 훈련장을 거부하며 좋은 믿음의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할 뿐입니다. 믿음은 환란과 시험을 통해 영광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7)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말합니다.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혼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5:3-4)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수동적 수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어로 hupomone입니다. hupo는 전치사로 “under, 아래에라는 뜻입니다. mone는 영어로 “remain, 남다 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무시무시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견고하고 변함없는 태도로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참아내는 모습을 말합니다. 고난에 대해 용기 있는 믿음의 대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환경에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거칠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참아내는 영적 지구력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네 번째 마지막 핵심이 나옵니다.

넷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여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지주 조개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The most extraordinary thing about the oyster is this. Irritation gets into his shell. He does not like them. But when he cannot get rid of them he uses the irritation to do the lovelist thing an oyster ever has the chance to do. If there are irritations in our lives today, there is only one prescription: make a pearl. It may have to be a pearl of patience, but…make a pearl.. 여러분의 인생에 시험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들었습니까? 인내로 진주를 만드십시오. 고난이 닥치고 시련이 옵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그리고 그 인내를 통해 인생의 보석, 진주를 만들어 내십시오. 믿음의 보석을 만들어 내십시오.

시험이 변하여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라는 과정이 일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승리를 쟁취하려 합니다. 너무 급하게 열매를 기대하고 결과를 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곡식도 뜨거운 햇빛 속에 때를 기다려야 하고 인생도 시험이라는 어려움 속에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시험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내 속에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인생의 극심한 시련 가운데 배우는 한 가지 진리는 사람은 사람을 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로 인생의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 속에 소망을 두시고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가장 힘든 Test는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믿음의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인내하는 것은 우리가 불가능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If you are unable, God is able. He has a reason for allowing things to happen. We may never understand his wisdom, but we simply have to trust his will. Because no place is more secure than to be in God’s hands. 그분을 신뢰하며 시험과 고난 가운데에서 승리하시는 매일 매일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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