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시편 116:1-19)


20163 13(주일 낮, 창립 에배)

들어가는 말

여러분 누가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사람입니까? He enjoys much who is thankful for a little.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사는 사람은 작은 것에도 크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는 것도 참 감사하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더 감사한 것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감사가 없는 인생보다 작은 것에도 감사가 넘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진짜 인생을 즐기는 복된 사람입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듭니다. 그 감사를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실망감을 몰아내고 소망을 줍니다. 감사는 원망을 몰아내고 긍휼을 낳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을 줍니다. 감사는 성공자의 태도입니다. 감사는 승리자의 자신감입니다. 감사는 겸손의 다른 말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감사의 말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감사는 복을 날라 옵니다. 감사는 인생을 바꿉니다. 감사는 한 밤의 불꽃놀이와 같은 것입니다. 모두가 즐기고 모두가 보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입술은 감사의 언어가 풍부합니까? 여러분들의 삶에는 감사의 몸짓이 늘 배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감사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시편 116편은 개인의 감사시입니다. 이 시편은 성전 뜰에서 큰 축제 기간 중에 감사 제물을 드릴 때 사용되던 시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기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묵상하면서 지난 세월 동안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시고 다시 한 번 감사의 제사를 올려 드리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1-7)

첫 번째 시편 기자의 감사는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1절에서 6절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말씀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 하나님이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 아닙니까? 시편 기자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116:1) 사람도 말을 귀를 기울여서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저도 제 설교를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는 열심히 설교하는 데 다른 데를 보고나 다른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별로 좋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화가 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는 적을 알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이 먼저 그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요일 4:19) 시편 18:1에도 보면 다윗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면 누구나 그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 당연합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간절한 음성을 들으시고 피가 마르도록 간구했던 호소를 들으신 하나님을 행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입술로 감사제를 돌려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2절의 고백으로 진전됩니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기도응답의 단맛을 체험한 사람은 자꾸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해본 사람은 압니다.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좀 더 가까이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주목해서 들으시는 주님의 관심 어린 태도 표현합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깊은 관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부르짖을 때 성실하게 들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하나님을 향해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평생을 기도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합니다. 이 사람은 기도의 비밀을 깨우친 것입니다. 기도는 사실 평생 하는 것입니다. 마치 숨을 쉬듯 평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 생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순간은 한 순간도 없습니다. 기도를 평소에 안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도한 것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내개 새벽 기도 한 번 했네 하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두 시간 했네 하고 스스로 놀라고 대견해 합니다. 너무 기도한 게 계산이 되어집니다. 영적으로 별로 건강한 모습 아닙니다. 숨 쉬는 것이 느껴지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이듯, 기도하는 것이 마치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면 문제인 것입니다. 기도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구체적으로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 기도를 했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간증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보며 그 시절을 간증합니다. 사실 어렵고 곤고한 시절이 영적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축복의 기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밖에 의지할 것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될 때 기도간 간절해지고 진실해집니다. 사실 한 많은 우리의 사연들은 주님을 깊이 체험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음부의 고통과 아무도 이해 못할 슬픔의 심연에서 우리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다. 모든 길이 막혔기 때문에 우리는 위를 바라 볼 수 있는 영적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가장 진실한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본문 시인의 기도는 짧지만 간절하고 심오함. “ 내 영혼을 건지소서. 모든 수식어를 뛰어 넘는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믿음이 배어 있는 탄원시를 올려 드립니다.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시인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영적 지식입니다. 5, 6.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여러분, 하나님의 귀는 언제나 그 백성을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하십시오. 누군가를 통해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귀를 활짝 여시고 우리가 음성을 발하고 간구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이나 초라함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낮고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 많이 하셨지요? 응답도 많이 받으셨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점검해야 하는 것은 시편 기자처럼 기도했느냐 보다는 시편 기자처럼 기도 응답을 받은 후에 감사하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 모두는 위가 상황이 오면 당연히 기도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환난과 슬픔 가운데. 내가 비천해지고 낮은 자리로 떨어질 때. 당연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 응답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시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감사할꼬(8-12)

두 번째 단락은 이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무엇으로 감사할까를 놓고 마음의 결단을 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먼저 시인은 자신이 당했던 시련과 주님의 구원을 좀 더 상세히 묘사합니다. 8절에서는 실족치 않게 하신 하나님 고백합니다. 9절에서 그런 하나님을 향해 미래적 결단을 드립니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8절에서는 사망의 세계에 있던 시인이 생명의 세계로 넘어 온 것입니다. 그 후 생명과 빛의 땅에서 사는 기쁨과 자유를 마음껏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무섭고 두렵던 올무와 고통에서 벗어난 확신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온전한 영적 교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누리며 주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말해 주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Coram Deo”서 살아야 합니다. 즉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삶의 방식은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직 주님의 인정만을 받기로 작정하고 사는 인생, 이보다 더 확실한 인생은 없습니다. 사람 눈치 볼 것 없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항상 가변적, 피상적이고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보문 11절에서 말함.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목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한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2절입니다. 이게 시편 기자의 위대함입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인생. 은혜를 기억하는 인생. 은혜에 걸맞게 사는 인생. 멋지지 않습니가?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받은 것이 작게 느껴지는 사람 아닙니까? 가진 것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사람 아닙니가? 자기의 처지가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닌가요? 언제나 받을 생각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럼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갖은 것을 족히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사실 이 질문은 신앙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사람은 궁극적으로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질문에는 깊은 감사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막을 수 없는 사랑과 사모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께 드리고 싶은 영혼의 예배와 찬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받은 은혜를 세어 본적이 있으십니까? 거저 주신 죄 사함의 은총. 영생의 소망. 현재 누리고 있는 온갖 축복들.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며 감사로 목이 메어 본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언제나 무엇인가를 받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게 내 모습이 아니었나요? 이제 무엇인가를 드릴 것을 찾을 때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라.(13-19)

13절과 14절에 보면 드디어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은혜에 보답할 방도를 찾은 것을 보여 줍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의 잔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구원을 감사하는 의식에서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잔을 말합니다. 이 잔을 높이 들어 올린 후 여호와의 제단에 온전히 부음으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전하고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서원했던 모든 것을 여호와께 드림으로 감사를 드라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세 가지 형태가 갖추어 질 때 온전해 집니다. 첫 번째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하는 언어입니다. 세 번째는 그 감사에 실제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Thanksgiving is good, Thanksliving is better. 감사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삶은 더 좋은 것입니다. 감사는 입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이 뒤따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진정으로 감사가 넘치면 그 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사람은 감사가 풍요로운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다짐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개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17절에서 19절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하면서 감사 축제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시인은 이 감사 축제의 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전 뜰에서 감사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공동체 앞에서 자기의 서원을 갚은 것입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높여 드립니다. 찬송합니다.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침묵 가운데 잠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게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신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라갔습니다. 믿음의 고백이 성숙해졌습니다. 삶 전체에서 감사가 자라갔습니다. 여러분, 혹 어려움 가운데 있으십니까? 낙망 중에 계십니까? 인생의 난관이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세심하게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기 위해 응답을 준비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에게 이미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을 기억해 내십시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감사의 조건들이 셀 수 없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기를 멈춘 사람은 사실 무덤처럼 잠이 든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오늘은 하나님의 돌보심의 결과입니다. 건강, 가족, 물질, 주변 환경, 심지어는 이 시간 예배드리는 것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99가지의 감사 조건이 있는 데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불평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 중 주변을 둘러보며 감사의 조건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불평하는 사람,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감사하는 사람, 감사의 언어를 사용하는 은혜의 사람이 되십시오.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면서 감사의 방법들을 찾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당신의 삶 가운데 더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생길 것입니다.

 

셋째로 구체적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시편 기자는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자기가 한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라고 다짐합니다. 막연하게 감사하지 마십시오. 구체적으로 하십시오. 예배로 감사하라. 찬송으로 감사하라. 서원을 지킴으로 감사하라. 예물로 감사하라. 합당한 삶으로 감사하라. 감사가 넘치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감사가 충만한 축복의 가정이 되십시오. 감사가 넘치는 직장과 사업체가 되십시오. 감사가 일상화 된 학업의 현장이 되십시오. 감사가 넘치는 우리 안디옥 감사 공동체를 이루어 가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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