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믿고 일어섭시다.


약속믿고 일어섭시다.


(여호수아서 14:1-15)


2016 8 14 (주일 낮 예배 설교)


들어가는 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가들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약속을 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근간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도원결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 밭에 함께 모여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의형제를 맺으면서가 태어난 해와 달은 다르지만 같은 날 같이 죽기로 맹세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같은 날 같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했던 약속에 대한 충실한 헌신과 의리는 후대 사람들이 높이 칭송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와는 반대되는 재미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1984년 룩셈부르크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장미꽃 약속>에 대한 위약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137만 프랑을 청구했습니다. 나폴레옹은 1799년 구테타를 통해 제 1 통령으로 취임하기 2년 전인1797년 자기 아내 조셉핀과 함께 룩셈부르크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합니다. 학교는 나폴레옹 부부를 열렬하게 환영을 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나폴레옹은 3천 리브르나 (프랑스 혁명 이전의 화폐) 하는 장미꽃 다발을 교장에게 선물로 주며 말했습니다. “프랑스가 존재하는 한, 매 년 오늘이 되면 꼭 이 학교에 장미꽃을 보내겠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 정부가 185년이 지난1984년에 <장미꽃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빌미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137만 프랑을 청구한 것입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프랑스는 결국 정중한 사과 편지를 보냄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헛된 약속이 빛은 에피소드입니다.


여러분, 약속 잘 지키십니까? 약속때문에 속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때문에 속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금전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경우를 경험하며 마음 상해 본적 없으십니까? 말한대로 안 지키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나 본 적 없으십니까? 내가 그런 경험이 있나하고 깊이 생각해 보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약속을 안 지킨 적도 많고 우리 자신이 말한대로 행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 속상하게 한 적도 많을 것입니다. 다만 약속을 안 지키는 당사자인 우리 자신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모를 뿐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여러분이 지키지 못한 약속은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쉽게 잊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약속을 안 지켜서 화가 나고 속상한 경우는 오랫동안 잊지 않고 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한 사람이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사람은 모두 약속에 신실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실수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께 맹세한 것 까지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정말 심각한 것이지요.


만약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셨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굉장히 불경스럽게 느껴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독하는 불신의 행위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당연히 믿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시라고 분명하게 믿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생각이 맞습니다.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믿는대로 여러분과 제가 그렇게 행동하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그대로 행동하고 그  믿음의 결과를 받아 누리느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누가복음 10 25절에서37절에 보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너는 율법교사가 아니냐? 네가 알고 있는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그러자 그 율법사는 일각의 지체도 없이 유창하게 말합니다.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나이다.”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러자 율법사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자랑하려는 마음에 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교사에게 다시 질문하십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Go and do likewise. 그러면 살리라. You will live.”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좋은 이웃이 되는 법을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런 이웃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것이 되어서 살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모두가 원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생을 얻게 된다면 반드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3:19)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여호수아서 21 45절에서도 분명하게 증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응하였더라.” ( 21:45) 말씀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 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24:35)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는 그 말씀을 실제 삶에 그대로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말씀이 현실이 되는 역사는 그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길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다 ( 7:24)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네 인생을 맡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삶 전체를 말씀에 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약속 믿고 일어서는 갈렙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믿음의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합니다. 바로 모세가 가나안에 정탐꾼 중 한 명으로 보냈던 갈렙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계속 승리를 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이 모여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의 뜻과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의미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합니다. 잠언서 16 33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의 작정하기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 16:33) 이때 갈렙이 권리 주장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제비를 뽑고 안 뽑고의 문제 이전에 우선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자기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권리를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으면 제비를 뽑을 필요가 없습니다. 갈렙은 민수기 13장과 14장의 사건을 회상시키며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요구를 합니다.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 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수기14 24절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갈렙이 지금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갈렙은 무대 뒤의 영웅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줄애굽 세대 중 유일하게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살려주시고 친히 약속을 주신 사람입니다. 가나안 정탐 소식에 접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함으로 20세 이상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광야 40년이 왜 있었는지 아십니까? 이런 저런 이론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답을 단순하게 말씀으로 주십니다. 너희가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 생존하니라.”( 14:34-38) 광야 사십년은 불평과 불신의 세대를 고생 가운데 죽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심판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하나님이 살려 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자고 자기 인생을 걸었던 갈렙입니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그의 행하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생존시켜 주신 이스라엘 장정 60만명 중에 유일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동안 뒤에서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순종하며 잠잠히 지냈습니다. 마치 장미를 들어내는 안개꽃처럼 없는 듯 겸손히 자기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정말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수준 높은 영성의 사람입니다. 자아를 죽이고 말씀대로 산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경쟁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습니다. 그가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도력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영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겸손하게 처신해도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자기의 기업을 받아 누리고 가장 보람 된 일을 하게 될 순간이 올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전의 갈렙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불신으로 가득 찼던 열 명의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를 듣고 낙망한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대적하고 반역했습니다. 새로운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때 그는 옷을 찢으며 일갈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 14:7-9) 이런 믿음의 용사 갈렙에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 14:23) 지금 바로 이순간 갈렙이 이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45년 동안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산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힘은 약속에 대한 이행의 확실성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 4:20-22) 아브라함의 믿음을 평가한 바울의 말입니다. 갈렙이 동일한 하나님께 대해 동일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한 존재가 누구냐가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결정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모든 사람은 약속에 신실하지 못합니다. 아니 조금 더 좋게 말해서 신실하기가 매우 어려운 존재입니다. 때로는 약속대로 지키고 싶어도 못지킬 때가 많습니다. 작게는 시간 약속을 해 놓고도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깁니다. 도로가 막혀서 늦기도 합니다.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꼭 돈을 돌려주기로 했는 데 그게 잘 안됩니다. 내가 받을 것을 받으면 주고도 남을 것으로 생각을 해서 약속했는데 그 사람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나도 거짓말장이가 됩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내게 돈을 받을 사람도 또 다른 거짓말장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게 우리 사람의 모습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 하는 약속 중에 결혼 서약이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약속 중 하나라고 철저히 믿는 사람입니다. 결혼 할 때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서로 존경하고 돌보며 살다가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 거룩하고 신성한 약속마저 쉽게 깨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부족한 사람의 약속도 믿고 인생을 맡기는 데 우리가 어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진짜 믿으면 그 약속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을 믿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 보다는 불행해 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평생 사랑할께 하는 약속을 믿고 결혼 했는데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우며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당신 없이는 못살아 하던 그 사람이 당신 때문에 못살겠다고 사사건건 싸우자고 덤비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인내하며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믿음의 영웅, 갈렙은 광야길을 안 걷고 비행기 타고 종주했나요? 배고품과 추위에 고생하지 않고 부페로 고급음식 먹으며 고급 호텔에 묶다가 그냥 가나안에 들어왔나요? 아닙니다. 갈렙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광야 사십년 고난과 인내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내적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방황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의심도 들고 마음에 상처도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갈렙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그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도 엘리야처럼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엘리야가 그랬던 것 처럼 인간의 연약한 성정도 지닌 저희와 동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5:17) 그러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갈렙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 순간, 이 자리까지 달려 온 것입니다.


85세의 믿음의 노인이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0절에서 12절입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하니( 14: 10-12) 약속을 붙잡고 일어서는 믿음의 영웅의 일갈입니다. 세월은 흘렀고 나이는 많아졌지만 그의 믿음은 조금도 늙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변질되거나 녹슬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조건이나 나이를 핑계로 좋은 땅을 달라고 하지도 않고 싸움을 회피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증거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은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5:4-5)   


당신도 약속을 믿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여러분.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이제 갈렙처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당신이 일어설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8:37-39)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분명히 아멘 하십니까? 그럼 이 말씀대로 사시기로 결단하십니까? 갈렙처럼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다시 일어나기로 선언하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을 이기셨다는 이 말씀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갈렙처럼 사실 수 있습니다. 살렙처럼 약속을 믿고 다시 일어서실 수 있습니다. 갈렙처럼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선언하며 멋진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헤브론 산지를 향해 나아갔던 갈렙의 결론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 내었고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5: 14-15) 하나님의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선포한 대로 된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 차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그럴듯 합니다. 그래서 믿고 기다립니다. 때로는 실망하고 간혹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불확실합니다. 그 약속을 하는 인간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경우 실망을 줍니다. 나폴레옹처럼 위대한 사람의 약속도 기대할게 못됩니다.


성도는 약속을 많이하고 그럴듯하게 하는 정치가를 믿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남편을 믿는 게 아니라 남편이 믿는 하나님을 믿기에 그 남편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아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아내를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모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그 믿음의 부모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자녀의 믿음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상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는 보잘것없는 인간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누가 감히 서로를 향해 나를 믿고 일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다시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속에 함께하시며 나를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는 성령님을 믿고 그분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따라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으시고 묵상하시며,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으시면서 여러분 개인을 향한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으십시오. 여러분 가정과 배움터를 향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들의 직장과 사업체를 향한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갈렙처럼 내것으로 선포하십시오. 도전하고 전진하십시오. 갈렙의 삶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며 축복의 지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의기 소침했던 영혼을 다시 믿음의 용기로 불태우시기를 바랍니다. 낙망과 좌절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믿음의 태도를 다시 불일듯 일으키십시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 나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신 그 산지를 향해 다시 전진하십시오. 여러분이 밟는 지경이 모두 여러분의 지경이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 누리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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