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의 실재가 될 때

하나님이 당신의 실재가 될 때

(시편4:1-8)

2016 116(주일 설교)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이 시편 4장은 한 편의 기도문입니다. It is a prayer of trust in the Lord. 여호와 안에서 드리는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프와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면서 함께 올려드리는 기도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인도자의 현악에 맞춘 노래, With stringed instruments.>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의 기도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요즈음 세상에도 유명하고 훌륭한 연주가들이 많습니다. 기독교 연주가도 있고 크리스천 성악가도 많습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다윗만한 연주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첫째는 선지자 사무엘이 할 일을 대신해서 자기가 번제를 드리는 영적 죄를 범했습니다. (삼상 13:8-15) 둘째는 하나님께서 진멸시키라는(total destruction) 원수 아각을 살려두고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살려둡니다. 욕심으로 인한 불순종입니다. (삼상 15:1-23) 셋째는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교만을 범합니다. (삼상 15:12)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장래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옮겨가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이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을 번뇌 (An evil spirit from the Lord tormented him.)” 하게 합니다. (삼상 16:13-14)

이로 인해 다윗이 사울왕을 위해 수금을 타는 자로 발탁이 되어 왕궁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탑니다. 그 순간 사울이 상쾌하여 낫게 되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갑니다. (삼상 16:23) 이보다 더 놀라운 연주의 달인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악령 (an evil spirit)이 떠나 갈 정도로 영성이 함께 하는 음악가, 이런 음악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 시편이 바로 그런 다윗이 그 유명한 수금(harp)를 켜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시편인 것입니다. 엄청난 영성이 흐르는 믿음과 신뢰의 기도가 노래의 형태로 전능자의 보좌로 올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전 존재가 음악과 함께 기도로 주님의 임재앞에 엎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본문의 분위기속으로 자신을 이입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가슴 아픈 현실: 관계의 아픔

오늘 기도가 이렇게 절실하게 올려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둘러친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아픔과 염려의 원인이 될 때에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How should we react when people do us wrong? 그냥 자기들 좋은 대로 하라고 해! 하고 포기하십니까? 아니면 그런 상황속에서 더 깊은 의미나 목적을 찾기 위해 애를 쓰십니까? Do we see a deeper meaning and purpose in the circumstances?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과 어려움속에는 우리가 느끼고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Is there more to trials than just the pain? 다윗은 불공정하고 불의하게 취급받았습니다. 속임을 당했고 거짓에 농락당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에게 그런 일을 행한 사람들이 바로 그가 가장 사랑했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원수는 바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왕위를 찬탈하기 (usurp a throne) 위해 아버지 다윗을 향해 구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 다윗은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 고통속에 담겨져 있는 깊은 영적 목적입니다. 여기에 고난의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 담긴 상황속의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But in the midst of this agony, David saw what few see; the deeper spiritual purpose in suffering. Here is the law of trials: Never look at the circumstances, look at God of the circumstances.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라. (1)

          그래서 고통중에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전능자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 목적과 뜻을 알려 주실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Answer me when I called to you, my righteous God. Give me relief from my distress, have mercy on me and hear my prayer.” 1절입니다. 고통 중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가장 잘 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미나가 아닙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바로 고난과 고통입니다. 스트레스요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인생의 염려와 근심입니다. 그때 모든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기도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합니다. 그것도 간절히 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전능자가 도와주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면목없지만 그분을 향해 도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고통 중에 있으시면 ,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구나!’하고 영적으로 깨닫기 바랍니다. 이런 생각은 절대로 잘못된 신학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라는 말입니다. 혼자서 인생을 살아내기에는 해결하지 못할 수없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고통은 그런 연약하고 한계가 분명한 존재인 인간을 향해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랑의 초청장입니다. 혼자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인간의 실존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인생을 역전시킬 비결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왕이라는 체면도 용사라는 교만도 다 내려놓고 주님 품에 달려가 안기는 것입니다. 위기 중에 자기의 부족과 무능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축복의 서곡입니다. 그는 자기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의 마지막 결론 부분인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평안히 눞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 시니이다. For you alone make me dwell in safety.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 시니이다 ( 4:8) 시편3편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듯는 자이시니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여호와는 내 방패십니다 구원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이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3:5, 8)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이론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개념으로만 알고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신학적 교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체험으로 만난 실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짖는 자와 부르짖는 대상 사이에 진정한 만남의 경험이 있는 살아있는 관계속의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의 실재가 될 때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응답하실 것을 아는 것입니다. God has answered before He will answer now. 경험을 통해 그의 삶에서 하나님이 실재이심을 깨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고통과 스트레스와 슬픔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수금과 함께 찬송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생들아 경고를 받으라. (2-5)

          이런 자신감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죄를 짓는 인간들에게 당당하게 경고합니다. 2절입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참 하나님이신 야훼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에 빠진 자들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분이신 아도나이의 하나님을 떠나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경외함으로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분을 마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처럼 취급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인간이 범하는 죄악들을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처럼 취급하고 적당히 눈속임을 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특별히 개인적인 욕심과 죄악된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의 택하신 왕인 다윗을 향해 모반을 하는 압살롬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죄악의 형태는 세 단계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헛된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왕국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울 수 있는 것처럼 환상에 빠진 것입니다. 셋째는 거짓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seek false gods입니다. 거짓 신들을 쫒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입니다. 참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인간은 거짓신을 쫓게 됩니다.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으로 채워져야만 하는 영혼의 공간에 그분이 자리잡지 못할 때 인간은 헛된 우상으로 그곳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무신론, 즉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실제는 확신에 꽉찬 잘못된 믿음이고 그 자체가 우상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이런 어리석음에 영혼과 마음을 내어주는 영적 실수를 범하지 맙시다. 혹시라도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영광의 하나님을 욕보이지 맙시다.

          다윗이 이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3절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구별하신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안에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건강하게 회복된 자아상입니다. 창조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창조적 자아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처럼 사랑을 알고 거룩을 압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합니다. 그후로 인생은 타락론적 자아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사탄에게 올무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으로 보잘 것 없던 노예 민족 이스라엘은 왕같은 제사장 나라가 되고 다윗은 한갓 목동에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같은 이치로 저와 여러분은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무조적적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심판의 대상에서 축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새롭게 된 구원론적 자아상입니다. 이 실재를 경험하는 것 바로 믿음의 여정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본문 3절에서 말하는 투를 이해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이게 무슨 말이지요? ‘까불지 마! 하나님이 내편이야! 우리 하나님께 이를꺼야!’ 이런 겁니다. 하나님 안에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those whom God has chosen? It is God who justifies. Who is he that condemns?” ( 8:31-34) 이 놀라운 믿음의 자신감, 하나님이 자기의 삶에서 실재가 된 다윗과 바울의 고백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하나님 안에서 자신감이 충만한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실재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고통과 고난앞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나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신 그분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동일한 사랑과 긍휼로 나를 대할 것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만한 자신감을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이 경고를 넘어 권면을 합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서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4 절입니다. 악에서 돌아서 마땅히 행해야 할일들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악을 싫어합니다. 죄를 싫어합니다. 왜요? 그속에 고통이 숨겨져 있고 죽음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과 죄를 미워하고 싫어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과 죄가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과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라. Search your heart and be silent.” 네 심령을 먼저 점검해 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쉽게 비판하는 것 못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 지어다거짓것을 신뢰하는 허상에서 돌아서 참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심령을 돌려 참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명하고 영적인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잘 살피고 스스로를 먼저 아는 사람입니다. 잘난척하며 교만한 태도로 자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죄인이고 자신도 부족한 존재인 것을 내면 깊숙히 인정하고 잠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복주시는 분이 누구냐? (6)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영어 성경에 보면 “Who will bring us prosperity?” 진정으로 축복의 수여자가 누군지 몰라 여전히 혼미한 상태에서 변화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들어도 귀가 열리지 않아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능자의 손길아래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합니다. 머리카락 하나 새로 나게 하지 못하며 오르고 내리는 혈압 하나 조절 못하면서도 자기 힘으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도 감기에 걸리고 폐렴에 걸려 죽어가는 연약한 존재이면서도 자기 힘으로 산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살 집 한 칸 마련하는데도 평생이 걸릴 정도로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도 여전히 자기가 능력자인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고 전해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우리에게 번영을 줄 자가 누누냐?” 하고 찾아 헤매입니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는 다윗의 심정이 이런 호소로 나타납니다.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이게 비추소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재가 아니라 임재를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not absence but presence) 모두가 알 수 있도록 가시적이고 분명한 방법으로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이런 다윗의 심령과 같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제주로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증거를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번영을 주는 게 누구냐?”하고 묻는 세상과 불신자들에게 나다!” 하고 !” 하고 나타나셔서 내 체면 좀 세워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하나님은 대분분의 경우 그렇게 해 주시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안하시나요? 휴가 가셨나요? 아니요! 그것보다 엄청난 일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바로 7절과 8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 내가 평안히 눞고 자기도 하리리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 4:7-8) 무엇보다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영혼을 소생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이 상하면 모든 것이 상합니다. 사람이 영혼이 상처를 입으면 그 인생 전체가 상처로 피폐해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He restores my soul”으로 찬양합니다. (23:3) 마음에 기쁨이 살아나고 영혼이 소생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인생을 이끌고 가는 핵심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살아가는데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가치를 둔다는 말입니다. ㅅ라ㅏㅁ은 영혼이 생명력으로 차고 넘치는 한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낙망과 염려 가운데 기도를 시작할 때 이미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영혼의 소생입니다. 마음의 기쁨입니다. 내면 세계의 영적 질서요 평안입니다. 나를 속상하게 하는 가족이 변해서 내게 맞추어 주려면 참 많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아빠가 나에게 맞추어 변해야 합니다. 엄마가 그래야 합니다, 아들이 그래야 하고 딸이 그래야 합니다. 사위가 그래야 하고 며느리가 그래야 합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새롭게 해 주시면 세상은 다 달라집니다. 변한 내가 변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주변과 세상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소생시키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시인 다윗이 기도에 응답을 받았느냐보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실한 다윗의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슬픔과 고통으로 시작된 기도가 응답의 결과를 보여 주기도 전에 신뢰와 믿음의 확신으로 승화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기도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받은 줄로 알고 감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기쁨이 솟고 평안이 찾아오며 단잠을 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기도하고 맡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속에 실재가 된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 처럼 하나님은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지만 그 모든 것을 기도로 자세히 아뢰는 것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한 마디로 우리와 교제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대화 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말해봐. 다 해줄께!”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자기 인생에서 실재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실재가 (Reality) 되는 순간 내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슬픔과 절망가운데 은밀한 곳에서 울며 주님께 무릎을 꿇었던 다윗이 새로운 자신감속에 담대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에게 하나님은 실재였던 것입니다. God is reality for David. 한 번 구원해주신 하나님은 두번째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고난을 넘어서게 하신 하나님은 여섯번째 고난도 통과하게 하실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일곱번째 실패한 나를 여덟번째 성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안에 자신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없을 때까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He will never cease to help us until we cease to need. 만나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곡식을 먹게 될 때 까지 매일 아침 내리는 것입니다. The manna will fall every morning until we cross the Jordan.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녀의 일생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시고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 개인의 실재가 될 때 우리는 어떤 상황과 삶의 환경속에서도 굳세게 일어나 미래를 향해 전진하게 됩니다. 환경이나 형편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겨서가 아닙니다. 고난을 통과시켜 주시고 슬픔 가운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그분이 끝까지 나를 돌보시고 필요를 채우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최후 승리를 주시고 이기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실재가 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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