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예찬 (禮讚)

걸레예찬(禮讚)

청춘을 예찬한다거나 위인들의 업적을 예찬하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걸레를 예찬한다는 것은 별로 그 '예찬(禮讚)'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걸레는 언제나 더러움의 상징이요 천덕꾸러기나 버림받은 존재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우스운 듯하지만 이 시간 나는 걸레를 默想(묵상)해 본다. 세상에 묵상할게 없어서 걸레를 묵상한다고 말하는가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걸레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걸레를 생각하면 우리 예수님이 생각난다.

예수님과 걸레는 공통점이 많이 있는것 같다.

첫째는 상대를 깨끗하게 씻어준다. 
더러운 마루에 걸레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깨끗해진다. 먼지가 자욱하던 선반도 걸레가 지나가면 제 색깔을 드러낸다. 흙탕물이 튀어 고물처럼 보이는 자동차도 걸레가 한참을 훓고 지나가면 새 차처럼 빛을 발한다.
걸레는 정말 멋있다. 우리 주님도 그렇다. 세리의 심령에 예수님이 지나가시면 그 영혼의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진다. 창녀의 영혼에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 영혼에서 온유하고 부드러운 찬양의 메아리가 울려난다. 더럽고 추악한 나의 속사람에 예수의 보혈이 흐르면 나는 깨끗하고 정갈한 새 사람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걸레와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케 하시는 나를 위한 신령한 걸레이다.

둘째로 걸레는 온갖 더러움과 추함을 주저함 없이 스스로 다 뒤집어 쓴다.
어린아기의 배설물도 이웃집 아저씨가 주정하며 토해낸  오물도, 예쁜 아가씨의 구두에 뭍은 먼지도, 방바닥에 떨어진 찌개 국물도, 십년도 넘게 싸여있던 장롱위의 케케묵은 먼지도... 모두 모두 닦아주고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들인다. 자기 몸 속 깊이 흡수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 주님이 그리하셨다. 주홍보다 더 붉고 먹보다 더 검은 내 모든 죄를 주님은 사랑의 보혈로 덮으셨다. 못된행실, 죄질 생각 다 담담하신다. 죄에 메인 영혼, 병든 마음을 다 받으신다. 주를 멀리 떠나 귀한 세월 다 보낸 내 초라한 현재를 주님이 '내 것이다' 라고 하신다. 말없이 끌어안으시고 온유와 긍휼의 손길로 새 것으로 빚으신다. 우리 주님은 실패한 영혼을 위한 거룩한 회복과 치유의 걸레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걸레가 사랑스럽다. 
예수님이 더욱 감사하고 고맙다.

그리고 한편 내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 주님은 걸레로 세상과 
죄인을 위해 살아가시는 데 나는 언제나 존귀한 왕비의 옷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우리 주님은 섬겨주고 닦아주시는 분으로 사셨는데.. 나는 과연 예수를 닮은 거룩한 걸레인가를 생각해 본다.
더러운 것, 천한 것은 언제나 피하고 몸을 도사리던 것이 나의 모습임을 발견하고 때론 걸레만도 못한게 바로 "나다" 싶다. 

나에게 섬겨주고 닦아주는 예수 제자의 모습은 어디 있을까? 부끄럽다.
세상에서는 모두가 더러운 것은 피한다. 오히려 더럽다고 욕하며 한 걸음 물러나 앚는다. 이런 세태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마저 똑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것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의 먼지와 때는 누가 닦아주는 것일까? 걸레를 묵상하면 걸레 예찬이 나온다.

걸레이신 예수를 닮는 걸레 같은 제자들이 그리운 시대에 살아가기에 더욱 걸레가 귀하고 위대하게 보인다. 예수 닮은 걸레가 되어 보지 않겠는가?
형제 자매의 못나고 추함을 닦아주고 세상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는거룩한 걸레가 되어 보지 않겠는가?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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