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되기

좋은 이웃되기


옛날 어떤 사람이 집을 사기 위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은 후 집값을 물어 보았다. 집주인이 대답하기를 집값은 1,001만금이 라고 했다. 무슨 놈의 집이 그렇게 비싸냐고 하자 1만금으로는 집을 사고, 1,000만금으로는 이웃을 샀다고 말했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이 서로 이웃이 되어 화목하게 공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이웃간에 따습고 진한 정이 오고갔던 옛날 어린 시절이 그립다. 당신은 어떤가? 이민 와서 분주하게 앞만 보고 살다보면 얼마나 정에 메마르고 마음이 각박해지는가? 우리 성도들은 이런 때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바쁘고 힘든 삶의 현실 때문에 마음이 무뎌지고 굳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자기만을 향하여 오그라드는 달팽이 같은 마음을 활짝 펴야한다. 나만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냉정해 지려는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주의적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선으로 만들지 않도록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가르친다.(레 19:18) 그뿐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마 5:44) 아마 일반적으로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 즉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대해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움의 대상이 되고 이웃이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Eric Hoffer가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전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더 쉽다. It is easier to love humanity as a whole than to love one's neighbour.”고 말한 것은 진정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좋은 이웃이 되어 준다는 것의 어려움을 간파한 말이다. 


어떤가? 당신의 이웃과의 관계는 안녕한가? 격의 없이 사랑이 오고가고 행, 불행이 나누어지고 있는가? 인류의 비극은 누군가 땅에 선을 긋고 줄을 치기 시작한데부터 출발되었다고 써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좋은 이웃이란 줄을 긋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담을 헐고 다가가는 것이다. 특별히 성도들 간에 실천되어질 이웃의 삶은 초상 같은 애사(哀史)가 있으면 찾아보고 경사가 있으면 전화 한 통이라도 하는 것이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다가갔던 사마리아 사람을 생각해 보라. 진정한 이웃은 피하여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 않을까, 혹시 손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슬금슬금 피하는 자는 성경적으로 옳은 이웃의 모습은 결코 될 수가 없다. 이웃이란 자기의 필요를 위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의 필요를 따라 다가가는 사람이다. 이 세상은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야 영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좋다. 


우리 모두는 좋은 이웃이 필요하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민 사회는 더욱 그렇다. 벽을 맞대고 가까이 살아서 이웃이 아니라 마음을 터놓고 언제고 찾아가고 찾아 올 수 있는 이웃들이 필요하다. 그 이웃들이 바로 성도라 불리는 교회의 지체들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있는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사랑하는가? 좋은 이웃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똑같은 기대를 나를 향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만이 자기라는 외로움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 예수님처럼 먼저 다가가고 먼저 사랑하는 좋은 이웃이 되어보자.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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