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오이지

오이와 오이지

한 행복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함께 오이를 가꾸고 그 오이로 오이지를 담그거나 피클을 만들었다. 남편은 오이가 싹이 나고 자라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겨울이 오면 그는 가장 좋은 오이를 수확하기 위해 새 품종에 관한 책을 읽고 봄이 되면 새로운 시도를 하곤 해서 매해 놀라울 정도로 좋은 결과를 거두곤 했다. 온 가족이 흙을 일구고 오이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를 심고 가꾸면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남편은 종종 밖으로 나가 자라가는 오이들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의 아내는 그 오이로 오이지를 담그거나 피클을 만드는 것을 즐겨 했다. 그녀는 자주 오이 요리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연구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배워서 오이지를 담고 피클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한 가족이었고 그 가정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돌아갈 때는 소문난 오이지나 피클을 선물로 받아 가지고 나오곤 했다. 교회도 언제나 그들이 공급한 오이지와 피클이 풍성하게 공급되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함께 이루어 내는 행복한 이 가족의 협동 사역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 그리고 봄이 오자 흩어졌던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자녀들은 입을 모아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희는 어머니가 오이지 담그는 것과 피클 만드시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정원을 잘 준비하고 좋은 씨앗들을 뿌려서 오이를 많이 수확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애들아 고맙구나! 하지만 더 이상 오이를 심고 가꿀 필요가 없단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오이지를 담그는 것이나 피클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내가 오이지를 열심히 담그고 피클을 만든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너희들 아버지가 오이 키우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기 때문이었단다.”

모든 자녀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이 말에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혼자 아버지의 병상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막내아들에게 자기가 왜 그토록 오이를 열심히 키웠는지를 살짝 이야기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막내야! 내가 왜 오이를 그렇게 열심히 기른 줄 아니? 그것은 너희 엄마가 오이지를 담고 피클을 만드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었단다. 사실 나는 오이 키우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 것은 아니야!”

여러분, 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슬픈 이야기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행복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함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섬겼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주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옳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왜 이것이 한편 슬픈 이야기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부는 자기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나누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자기의 감정을 전달하지도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진정한 대화가 부재된 삶을 산 것이다. 그들은 그저 상상하고 서로를 향한 의무는 이것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이를 키우고 오이지를 담근 것이다. 당신의 결혼 생활에는 진정하고 솔직한 대화가 있는가?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상대가 참으로 섬김 받기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가?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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