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과 선택 앞에서
<결정과 선택앞에서>
(마태복음 27:15-26)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 정의를 따라 결정하고 진리를 따라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잘못된 결정과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고 눈앞에 보이는 유익을 도모하게 될 때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의도에서 법정에 끌고 온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풀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공의에 따라 결정하고 행하지 않습니다. 이미 공의를 무시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에게 공의를 실천하도록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명절의 전례를 따라 바라바와 예수님중에서 한 명을 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특사를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럴듯한 핑계로 유대인들에게 인심을 쓰듯이 예수님을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 군중들이 예수님을 풀어 달라고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총독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럼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고 조언합니다. (19) 예수님이 무죄하고 옳은 사람인것을 빌라도의 아내조차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를 석방하라든지, 보호하라든지, 또는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아무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중립적인 태도는 교묘한 불신앙이고 공의에 대한 배반이요 죄에 대한 동조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그저 방관자적인 태도로 예수님을 대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것이나 불의를 묵인하는 것이 모두 죄이듯이 예수님을 상관하지 않는 태도도 불신앙입니다. 빌라도가 양심의 문제에 직면한 순간 군중은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칩니다. (21)

이에 빌라도가 묻고 군중은 소리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2-23) 빌라도는 거세게 요구하는 백성의 소요가 두려워 궁여지책으로 물을 가져다가 자기 손을 씻음으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하고 빠져 나가며 공의와 진리를 외면하고 저버립니다. (24) 결국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정 앞에서 세상의 눈치를 보며 처세술을 부리다가 결국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전례를 남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양심을 따라 살아간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양심을 따라 살게 될 때 입게 되는 손해와 기득권의 흔들림이 대립될때 그 사람의 양심은 무력화되고 마비됩니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공의와 진리를 외면하는 빌라도의 모습속에 오늘날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결정과 선택앞에 속절없이 자기의 안위와 이익때문에 무너지는 많은 경우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소망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어 주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하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할 때입니다. 당신은 이 결정과 선택 앞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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