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관용의 능력
<용서와 관용의 능력>
(사무엘하 19:16-30)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자 피난길에 올랐던 그를 독설을 퍼부으며 저주했던 사람들과 그 기회를 이용해 자기 유익을 챙기려 했던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바로 시므이와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같은 사람들입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삼하 16:12) 복수하는 것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다윗의 믿음대로 상황은 역전되고 시므이와 시바는 이제 죽음의 문턱에 서게 것입니다. 자기들의 죽고 사는 문제가 다윗의 말 한 마디에 달린 것을 깨달은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서둘러 다윗을 맞으러 나옵니다. 다급히 나와 다윗앞에 엎드려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말로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 내가 가장 어려울 때는 나를 업신여기고 나를 조롱했던 사람, 내 곤란한 입장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악용한 사람, ...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의 행위를 지켜봤던 신하 중 한 사람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21) 아비새의 조언을 옳은 것 같지만 최고의 상책은 아닙니다. 군신간에 기강도 세워야 하고 왕권강화를 위해 본보기도 보여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방법은 아닙니다.

관용과 용서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바로 다윗이 실행한 방법입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2-23)

용서는 우리를 상처투성이의 나약한 자로 만들기보다는 우리의 삶과 일에 오히려 힘을 더해 줍니다. 용서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상대를 진정으로 이기는 승리의 길입니다. 용서는 정의라는 애매한 수수께끼를 넘어서 진정한 마음으로 평화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심판이나 정죄가 결코 만들어내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해결책이 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실천하는 이런 용서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매가 맺히게 해서 긍정적인 연쇄반응의 출발점이 됩니다. 시므이를 향한 다윗의 용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따뜻한 연합 공동체로 만듭니다. 다윗이 만약에 시므이를 죽였다면 귀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다윗을 피했을 것이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안에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이후 통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서와 관용은 모든 것을 품는 아름다운 능력이 되지만 복수가 담긴 심판은 모두를 떠나게 하는 공포의 칼날이 되게 합니다.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키지만 복수는 관계의 악화를 가져옵니다. 용서는 미래의 행복을 위한 씨앗이지만 복수와 정죄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주변으로부터 모함받고 피해보고 상처 입어보신 적 없으신가요?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마음을 넓혀서 품어주고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시므이같고 시바같은 기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비새처럼 정의라는 이름으로 용서와 관용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옛 자아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실천하기 위해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겸손의 옷을 입고 다윗처럼 실제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주변은 따뜻해지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복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행복한 용서와 관용의 사람입니다.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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