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행복한 성도

감사하는 행복한 성도

(디모데 전서1:12-17)

주일 예배 (20159 27, 추석)

                                                                            

들어가는


우리가 살아 날들을 뒤돌아 본다는 것은 과거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어떤 일들은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어떤 일들은 슬픔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들은 가슴 아픈 추억이 담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성경적으로는 거의 모든 경우가 감사라는 단어로 요약이 되는 같습니다. 실패와 절망이 있었지만 일어서서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실수와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덮어 주시는 은혜로 살아 왔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있었지만 싸매고 만져주시는 긍휼과 자비의 손길에 이끌려 살아 왔습니다. 가난도 질병도 넘어서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 속에 걸음 걸음 걸어 현재라는 현재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사 외에 다른 단어로 과거가 정리되지 않는 은혜를 맛보고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백입니다.


혹시라도 우리 중에 누군가가 과거를 생각하면서 감사보다 불평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그것은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처녀가 집에 오다가 강도를 만나 귀하게 여기고 애지중지하는 반지를 빼앗겼습니다. 아가씨가 집에 와서 재수 없게 강도를 만나서 반지를 빼앗겼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불평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조용히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을 지켜 주셨음을 감사해라. 반지야 사면 되지만 만일 손가락이 잘렸거나 흉악한 일을 당했더라면 어쩔 했니?” 삶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가 과거를 감사로 뒤돌아 보게 하기도 하고 불평과 원망 가운데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는 사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할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란 어느 가지 특정한 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전체를 굳건하게 받쳐 주는 반석과 같은 믿음의 습관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행복으로 바꾸고 싶으시면 모든 것에 감사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훨씬 활력이 넘치게 것입니다. 거부하던 것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게 것입니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임하게 것입니다. 혼돈 속에 명료한 길이 보이게 것입니다. 과거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고 현재를 평화가운데 살아가게 아니라 미래를 긍정과 믿음의 시각에서 낙관하며 개척해 나가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감사를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마치 선물을 사서 예쁘게 포장을 전해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 감사를 표현할 우리의 행복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라고 권면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


하지만 우리는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웬만한 호의에는 감사하지 않는 세대가 바로 세대의 모습이고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좋은 것이 너무 많이 주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때도 더러 있습니다. 건강도 잃어버리기 전에는 건강에 대해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전혀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 자녀들의 모습이 아닐까 염려도 해봅니다. 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에 둔감하고 감사의 조건들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누립니다. 며칠 전에 울릉공에 호주 장로교 부부 수련회를 다녀 오다가 해변 경치가 너무 멋지기에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한국의 친구에게 전송했습니다. 친구는 그런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저를 부러워하며 호주에 오는 것이 친구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런 삶의 현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 드리기보다는 마치 당연히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좋은 호주에서 살아가면서 감사는커녕 매일 모든 일에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주어진 행복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고용주는 직원에게, 직원은 고용주에게 감사보다 불만이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감사보다 불평을 많이 합니다. 국민이 정부에게 감사보다 불평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성도가 교회나 다른 지체들에게 감사보다 불평을 많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이 많습니까? 무언가 불편하고 불평거리가 많습니까? 감사를 표현하십니까 아니면 무덤덤하게 살아가십니까?   


오늘은 추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감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진정한 감사란 당연한 것을 은혜로 여기는 것입니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특별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햇살이 비추이고 단비가 주어지지만 오직 감사하는 사람만이 참으로 그것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로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무감각하게 받아 들이던 것에 대한 감사가 표현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에서 구원 받은 것을 깊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자기에게 직분과 사명을 맡기신 것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위대한 믿음의 선배 바울 사도입니다. 그분 정도면 자기를 주장할 것이 조금 있지 않을까 생각을 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조금도 마땅히 주어질 것을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깊은 겸손가운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감옥 속에서도 기뻐하며 우리를 향해 기뻐하라고 말하는 바울의 행복비결이 있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자신을 위한 특별한 것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감사가 표현될 사람의 삶의 질은 매우 달라집니다. 행복해 지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감사가 메마른 시대에 성숙한 성도의 가장 특징적은 표식은 감사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만 믿는 사람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적 기준에서 좋은 것이 주어지면 감사하지만 믿는 자는 영적인 것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오늘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감사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배우고 마음에 새겨서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감사로 행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맡겨 주심에 감사하라.


첫째 본문에서 보여주는 감사의 이유는 일을 맡겨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겨 주심이니 (딤전 1:12) 세상 살아가며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일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존재하게 하신 분이 존재목적을 이룰 사명을 맡겨 준다는 것입니다. 일을 맡긴다는 것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도 실력이나 성실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람에 대한 인정이 있을 일을 맡기는 세상 이치입니다. 성실하고 충성 되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능력과 충성심의 정도가 사람에게 맡겨지는 일의 크기입니다. 능력은 있으나 충성심이 없으면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충성심은 있는 능력이 없으며 일을 맡기고 싶어도 맡기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감사하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을 맡기신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는 직분을 맡기시는 하나님께서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번째는 자기를 충성스럽게 인정해 주시는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성실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직분을 감당할 능력은 그리스도가 주시고 능력을 사용해서 직분에 충성하는 것은 바울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맡겨진 일에 임하는 바울의 태도를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바울 사도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으신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교사입니까 감사하십시오. 목자, 목녀 또는 셀장입니까? 감사하십시오. 주방에서 밥을 짓고 요리를 해서 성도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배부르게 하며 섬기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찬양으로 섬기고, 청소하며, 운전하며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으로 섬기고 봉사하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감당할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건강도, 시간도, 믿음도, 물질도 공급하시면서 귀하고 아름다운 일에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부르심에 헌신하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충성스럽게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간혹 교회에서 일을 맡기거나 시킬까 걱정하시는 분이 있는 같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게 일을 맡기는 사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면 바르게 사용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맡겨진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없는 가장 명예로운 축복입니다. 가장 비참하고 초라한 경우는 아무 일도 맡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일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주어지지 않아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맡겨지면 일단 감사하십시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영광인데 돈도 받지 않고 섬김으로 나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세상의 사장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특권인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입니까? 바울 사도는 진리를 깊이 깨닫고 있었기에 능력 주시며 충성 되이 여겨서 사도의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감동과 통찰을 가지고 직분을 맡기시고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깊이 감사를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는 것이 행복하고 섬기는 것이 기쁨이 될것입니다.


겸손할 감사가 나옵니다.   


  번째는 죄와 구원의 은혜를 깨닫는 겸손의 마음이 영혼을 가득 채울 깊은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겸손할 감사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가 자기의 과거의 보잘것없고 소망 없었던 모습을 거짓 없이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3-15)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되면 감사가 넘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개구리였다고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나비가 되기 전에 흉측한 애벌레였고 고치에 갇혀있던 소망 없는 존재였던 것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겸손이 없으면 나비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에 대한 감사가 희미해지고 감격이 사라질까요? 우리가 얼마나 소망 없는 존재였는지를 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죄인이었는지를 까맣게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바울 사도의 영혼을 감사로 가득 채우는 가지 근거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자기의 죄를 깨닫는 겸손입니다. 번째는 그토록 소망 없는 존재를 조건 없이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겸손입니다. 겸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를 해도 영혼이 없는 감사입니다. 그야 말로 요식 행위나 인사치레로 하는 감사입니다. 바울 사도를 보십시오. 에베소서 3 8절에 보면 스스로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죄인의 괴수라고 스스로를 고백합니다.  이런 무한한 겸손의 영혼가운데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겸손의 밭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겸손과 정비례합니다. 겸손한 사람일수록 주변을 감사의 조건이 많습니다. 교만하면 모든 것이 자기 공로고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에 감사할 일들이 없습니다. 자기의 허물과 죄를 보지 못하니 구원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진정한 감사도 우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날의 자기의 비천함을 돌아 아는 겸손한 마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올챙이 같았고 애벌레와 같았던 옛날을 겸손하게 인정하십시오. 그때 감사가 영혼을 채우고 마침내 입으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잠언서 30 9절은 내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라고 솔직하게 자신을 경계하며 기도하는 아굴이라는 시인을 보게 됩니다. 겸손히 과거의 비천했던 자기의 모습과 형편을 돌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강하다고 자만해서도 안되고 조금 먹고 살만해 졌다고 교만해져도 안됩니다. 약간 배웠다고 으스대어서도 안되고 먼저 믿었다고 으쓱대서도 안됩니다. 욥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이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 1:2)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이런 감사의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감사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있는 것입니다. 감사 속에 진정한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나가는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슬기로운 사람은 갖지 않은 것으로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갖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은혜와 복들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영혼에는 감사의 조건들이 늘어나 행복해지지만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의 씨앗들이 점점 숨이 막혀 죽어가다가 마침내 소멸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출발점입니다. 감사하는 습관은 성공의 습관입니다. 감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침묵하는 감사는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감사는 말하는 것이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때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순간에 동시에 마음이 우울한 사람은 있을 없습니다. 감사가 우울증을 쫓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며 동시에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감사가 불행의 안개들을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작은 것도 크게 누리게 합니다. 하지만 불평은 것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독소입니다. 감사가 행복을 날라오는 축복과 행복의 통로입니다.


바울처럼 일을 맡겨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합시다. 여러분들에게 맡겨지는 일들이 여러분 자신의 가정 일일 수도 있고 이웃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업무일 수도 있고 어느 공동체에서 감당해야 하는 섬김의 거룩한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일일 수도 있고 교회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맡겨 주시는 것은 여러분에 대한 인정입니다. 성실과 충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시고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충성하십시오. 일을 하시면서 감당할 능력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바울을 부르셔서 직분을 맡기시고 순간 감당할 능력을 공급해 주신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능력을 주면서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겸손 하십시오. 특별히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에게 감사합시다. 영적 올챙이 시절과 고치에 갇혀 있던 시절을 기억하십시오. 소망 없는 죄인이었던 것을 기억하며 겸손히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예수님의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것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것이 얼마나 감사의 조건인지를 깨닫게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가 느껴질 것입니다. 다른 지체들과 이웃이 되어 서로 버팀목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느끼게 것입니다.


시간 이런 깊은 감사가 여러분의 영혼에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회복되면 삶이 회복됩니다. 그때 여러분의 삶은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것입니다. 낙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깨어진 관계는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모든 위에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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