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


 

성탄의 의미

(누가 복음 2:10-11)

 

20211225(성탄 예배)

들어가는 말

 

         예전에 TV에서 어린이를 위한 만화 영화를 하나 보았습니다. 제목은 <The Night before Christmas; The Mouse Tale>입니다. 영화의 중간에 보기 시작했지만 내용은 분명했습니다. 두 마리의 어린 쥐들이 주인공입니다. 꼬마 쥐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에 어느 날 멋진 성탄 트리가 장식되면서 Christmas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꼬마 쥐 형제는 그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찾아 이런 저런 모험을 합니다. 처음에는 만난 사람들은 산타와 산타가 가져다 주는 선물을 가지고 성탄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친구들과의 모임과 파티에 성탄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세 번째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큰 개입니다. 그 개는 칠면조 다리를 물어뜯으며 성탄의 의미를 먹는 것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의 쥐는 여전히 그런 설명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 때 멋지게 장식 된 성탄 트리 가운데에서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는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있었던 한 아기의 탄생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그분을 경배 했던 목동들의 이야기와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천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찬송을 부르며 성탄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성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산타와 그 선물입니까? 연휴입니까? 불꽃놀이와 함께 즐기고 밤을 새우는 축제입니까? 우리는 해마다 이 시기가 오면 같은 질문을 합니다. “당신에게 성탄은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What is the meaning of Christmas for you?” 다소 식상하는 느낌마저 같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합니다. I've heard it hundreds of times!"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You had stopped getting excited about it." "성탄 기분 망치네!”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은 상업주의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휴가의 즐거움과 오락적 흥미를 깨는 귀찮고 번거로운 질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 인이고 형식적 껍데기 성도가 아니라면 반듯이 대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당신에게 성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보여주는 성탄의 의미들을 몇 가지 되새겨 보면서 이 의미 깊은 날의 참 뜻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탄은 하나님의 예언과 언약의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실 것에 대한 최초의 예언은 창세기 315절입니다. “내가 여자로 너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여기서 말하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후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21-3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는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늙은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저는 아 나이가 되도록 자녀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 집에서 자란 다메섹의 엘리에셀이 제 후사가 될 것입니다. 이 종이나 잘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임합니다.(15:1-5)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4-5)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마침내 100세의 늙은 나이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게 됩니다. 약속을 따라 얻게 되는 언약의 성취입니다.

 

         그 후 그 아들의 후손인 다윗에게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예수라이새는 바로 다윗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다윗의 집안에서 한 싹, 즉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12에서,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고 인용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를 말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라고 마태가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아들의 탄생 방법과 그 정체까지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태어난 그 아기는 바로 만 왕의 왕이요 구원의 주인공이 메시아가 되심을 예언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메시아의 태어나실 장소까지 하나님은 정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Whose origins are from of old, from ancient times.)(5:2)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약속된 대로 예수님의 탄생 속에 언약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이 예언의 내용을 잘 알고 있던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동방박사들에게 이 미가서의 기록을 들어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을 알려 줍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탄의 첫 번째 의미는 예언 성취로서의 성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취된 이 예언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 성도에게, 그리고 세상에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고 구체적입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실체가 인간의 삶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형이상학적 이상의 추구나 허상의 약속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인 것을 확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들이 그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목적 없이 허무 가운데 방황하다 스러져 갈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실존적 생명성에 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들이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인 성탄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면 아직 성취되지 아니한 예언에 대한 앞으로의 성취를 또한 확실히 성취될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이제는 말구유의 어린 아기로 오지 않으십니다. 만왕의 왕이요 심판주로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시게 됩니다.(16:27; 24:47-51, 고후 5:10) 성경의 예언입니다. 성탄은 이런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약속도 분명히 성취될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이할 때마다 약속과 예언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착오 없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초점을 맞추시고 그에 합당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데살로니가 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6-8, 2)

 

         둘째 성탄의 의미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말하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화육 사건, 성탄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이 됩니다. 이 사랑의 사건을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신 성탄의 사건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연약한 어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전능의 하나님으로 오시면 우리는 그 분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피조물 중에 하나인 태양도 마주볼 수 없는 데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그 형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을 체감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감하도록 그 분이 우리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어 우리처럼 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여러분들과 저를 구원하시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처럼 되셔서 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랑의 표현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세계로 이민을 오신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삶의 아픔과 고통을 지닌 분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똑같은 고뇌와 슬픔을 체험하신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인간의 삶을 처참하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인 죽음의 저주가 인간을 얼마나 노예로 살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의 세계로 들어오신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유, 실제로 우리의 고통을 감당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성탄의 의미와 이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죄악에 대해 무감각할 뿐 아니라 그 엄청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마치 불나방이 죽는 줄을 모르고 불을 향해 달려 들 듯 영원한 형벌과 사망으로 날아드는 게 인간의 속성이기에 하나님은 인간과 의논하지 않으시고 일방적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이 일방적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에게 오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언어로 사람의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본향과 영생을 알게 하시려고 천국에서 사람의 마을로 이민을 오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생일인 성탄의 의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격하고 젖는 은혜의 성탄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성탄은 화해와 용서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친히 화해의 다리가 되십니다. 십자가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화목과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관계의 회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하느니라.(5:10-11)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나뉘어져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이제는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의 자녀로 회복 된 것입니다.(4:16)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예수님의 오심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이유로 막혀 있던 담들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도 화해를 이루는 화목의 직책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2:13-15)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화목 시키십니다. 원수들이 변하여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시기를 기뻐하심이라.(1:20) 모든 것을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받아 누리는 최고의 축복 중 하나는 바로 화목과 화해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화목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분열과 나뉨, 다툼과 불화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탄을 통해 화해와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묵은 상처들과 아픔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행했던 그 잊지 못할 일”을 잊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족이, 나의 부모가, 나의 자녀가 내게 남겼던 그 상처들을 잊고 용서하면서 화해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 영혼의 가장 소중한 곳에 그들이 편안하게 거할 수 있도록 영접과 교제의 벤치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뿐 아니라 내 삶 가운데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온전한 관계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게 성탄의 의미입니다. 부족하고 가난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용서입니다. 화해의 손을 내미는 화목의 정신입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아직도 성탄의 의미를 찾아 헤매십니까? 베들레헴 말구유에 포장된 하나님의 선물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곳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의 온전한 성취가 계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숭고한 사랑의 숨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화해와 용서의 은총의 향기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삶으로 구현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언약과 예언을 깊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확증의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이루어질 예수님의 재림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는 성탄의 근본 정신인 사랑을 누리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셋째는 깊은 용서와 화목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로서 이제는 화해와 용서의 대사로 살아가기로 결단하십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깊이 용서하고 화해하십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여러분들의 가족 모두에게 성탄의 축복과 의미가 새롭게 되살아나고 넘쳐나는 은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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