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는 축복의 나무

담을 넘는 축복의 나무

(Blessings climb over a wall)

(창세기 49:27)

201613(주일 낮 예배 1, 2)

들어가는 말

나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평범한 사람이 바른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이 풍성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더 전개하기 전에 먼저 꼭 강조하고 싶은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은 저나 여러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훨씬 좋지 못한 조건과 환경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넘치는 축복과 인생의 성공을 성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유익하게 했던 축복을 유통하는<담을 넘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자라는 토크 쇼의 여왕 Oprah Winfrey가 있습니다. Oprah는 단순히 유명한 연예인이 아닙니다. Oprah는 전 세계인의 친구일 뿐 아니라 성과 인종과 집단의 경계를 뛰어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용기를 전해 주는 바른 성공자의 본보기 중 하나입니다. OprahTalk Show는 자그마치 140여 개국에서 방영되고 광고 수익만 년 간4천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Oprah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축복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가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시골 출신이었고 흑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6살까지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 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몇 명의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14살에는 임신을 해서 조산아를 낳고 그 아이가 죽은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마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불행한 애정관계와 실연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뚱뚱했습니다.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세계의 정상에 서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 주고 자기의 부를 나누어 주며 행복을 전하는 <담을 넘는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녀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샘 곁에 심긴 그녀의 신앙입니다. 그녀는 때때로 자기의 Talk Show 중에도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시도다.( 4:6) Oprah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세상의 온갖 어려움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Oprah는 기분이 우울해 지고 어려움이 밀려 올 때면 손에 성경을 꼭 쥔 채 아레사 (Aretha) 프랭클린이 부른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305>을 들으며 따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녀는 간증합니다. “강간을 당하고, 학대를 당하고, 매질을 당하고, 거부당하는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오직 한 길 만이 있었어요. 임신, 생활 보호 대상자인 어머니 그리고 살이 찌고 인기가 떨어지는 것 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만 있었을 뿐이에요.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리기는 하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저는 모든 것을 헤쳐 나올 수가 있었어요. 그녀는 침례교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매일Q.T.를 하고 있으며, 길을 걸으면서도,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씹으면서도, 침대에 들어가는 시간에도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교회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평범 이하의 인생에서 출발해서 <담을 넘는 풍성한 축복의 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현재 자기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데 열심을 냅니다. Oprah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명성만큼 나는 내 구두를 사는 것 이상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교회에 풍성한 구제 헌금을 합니다.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기부를 합니다. 도서관에 엄청난 양의 도서비를 기증하고 대학과 고등학교에 과학 교육 기금을 기부합니다. 대도시 빈민층이 진학 할 기회를 주기 위해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무주택자들을 위해 건축 기금을 내놓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자선 단체를 돕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물질 축복을 담을 넘겨 이웃에게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그녀의 삶 때문에 그녀는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Oprah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이런Oprah의 인생을 한 줄로 <신화가 된 여자 Oprah Winfrey>라고 말했습니다.

 

한 줄로 요약된 인생

 

오늘 저희 앞에 주어진 본문에도 이런 믿음의 주인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도 한 줄로 이렇게 요약해 놓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여러분,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들의 일생을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들의 삶을 기억하며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일 될까요? 그런 것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나의 인생은 어떻게 요약될까? 아마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라는 한 믿음의 사람의 일생을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약한 사람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입니다. 야곱이 임종 직전에 자기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예언적으로 남긴 유언 중 요셉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가장 진실하다고 합니다. 요셉이 경험한 삶을 가장 진실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축복의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요? 요셉의 일생의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봄으로 여러분 모두도 <담을 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삶

 

첫 번째 요셉의 삶의 특징은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뿌리를 어디에 내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여러분, 호주 농촌을 여행해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농촌에 가뭄이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초록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들판 전체가 노랗게 메말라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종종 그 하얗게 메마른 벌판에 초록의 나무가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또는 어느 한 곳만 초록 식물들이 줄을 지어 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곳은 시내가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나무들과 식물들이 그 시냇가에 심기어져서 뿌리가 물의 근원에 가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샘 곁에 심겨진 인생의 나무는 늘 푸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노래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1-3)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 이게 바로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자의 삶입니다. 그런 사람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하는 일 마다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즉 자기의 삶의 모든 뿌리를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노예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가 같이 동침하자고 그를 유혹합니다. 날마다 유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번번이 거절하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 조차 피합니다. 요셉이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39:9)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둔 자의 고백입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샘 곁에 심겨진 인생입니다.

 

감옥에 갇혀서 고생을 하던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애굽의 왕인 바로 앞에 서서 그가 꾼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바로가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해석한다며?( 41:15)하고 묻습니다. 그 때 요셉이 말합니다. “꿈의 해석 능력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41:16-17)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언제나 푸름을 자랑하는 축복의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전적으로 위탁된 삶, 이게 바로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인생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아름답게 흘러 넘치는 풍성한 축복의 삶을 살도록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 더러는 여전히 불행하고 여전히 풍성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지요? 잘못된 곳에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시냇가에 심겨진 인생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샘 곁에 심겨진 인생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여호와께 절대 의존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 때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생명으로 결속된 삶을 말합니다. 포도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생명의 근원되는 포도나무에 얼마나 견고하게 밀착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5, 7) 그렇습니다. 가지는 철저하게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열매가 풍성한 축복의 삶은 그 축복의 원줄기인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인생을 통치해야 합니다. 그 때 축복의 인생이 됩니다. 형통의 인생이 됩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여러분, 요셉처럼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십니까? 요셉처럼 생명의 근원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고 이끌도록 내어 주십시오. 그를 경외하고 두려워하십시오. 모든 것에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그 때 여러분들은 무성한 축복의 큰 나무로 매일 매일 자라갈 것입니다.

 

꿈을 간직한 삶

 

두 번째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에도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꿈은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다만 누가 그 꿈을 붙잡고 자기 것으로 선언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모두가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을 자기 것으로 간직하고 마침내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950년대의 미국은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흑인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가장 풍요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극심한 가난과 소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투표권도 없었고 식당과 극장, 심지어는 교회까지도 백인들이 있는 곳에는 흑인이 들어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시절 모든 흑인들이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백인들이 누리는 부와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인종차별의 사슬과 종족 분리의 수갑아래 꿈을 잃어 갔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앉아 신세를 한탄하며 비참한 삶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귀중한 인생을 방종과 범죄와 천박한 생활에 내어 주었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내어 주고 인생을 허비하고 패배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의연하게 꿈을 외치면 일어났습니다. 바로 Martin Luther King라는 흑인목사였습니다. 그는 침례교의 목사님이었는데 다른 대다수의 흑인들과는 달리 그의 영혼에 인종의 벽을 넘어 누리게 되는 축복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흑인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자기를 사탄의 먹이로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꿈을 결코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와 축복의 꿈을 영혼에 품고 그 꿈을 굳게 믿고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그는 그 꿈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했습니다. 그는 그 꿈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데모를 하다가 물 대포에 날아가기도 하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고 수 없는 암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1963 8 28Washington D.C.에서 대규모 평화 시위를 주도하며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라바마에서 사악한 인종주의자와 또 그 주지사가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선언과 함께, 바로 그 알라바마에서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형제자매가 되어 손에 손을 잡는 날을 꿈꿉니다. 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은 1964년에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684월 존 윌러드에게 저격을 당해 39세의 나이로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사라지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흑인인 Barak Obama가 대통령이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꿈은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문제는 누가 그 꿈을 끝까지 자기 것으로 소유하느냐 입니다. 누가 끝까지 그 꿈을 추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도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외롭고 고독한 인생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유혹도 있었습니다. 그 유혹을 거부함으로 감옥에 갇히는 대가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 그 꿈에 합당한 삶을 꿋꿋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룹니다. 무성한 나무가 되어 그 가지가 되어 담을 넘는 축복의 거목이 되는 꿈을 이룬 성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분명 무엇인가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호주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선택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많은 사람은 마치 꿈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처럼 실패와 좌절의 삶 가운데 빠져 방황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삶 이하의 초라한 인생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요셉이나 King 목사님처럼 꿈이 이루어지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Oprah Winfrey처럼 꿈이 현실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꿈을 이루고 성취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분들과 저에게 만약 그들과 같은 특징이 있다면 분명 우리의 꿈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축복의 가지도 담장을 넘어 이웃에게 축복을 나누어주는 성공자의 삶을 사실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고 성취하는 사람들은 꿈을 소유할 뿐 아니라 그 꿈을 매 순간 새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그 꿈을 마음에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꿈을 매일 생각하고 그 꿈에 초점이 맞추어진 삶을 삽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는 상황 가운데에도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맡겨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합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자리에서 오늘 바로 이 순간 자신의 최선을 쏟아 붇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믿음과 성실이라는 무기로 역경을 정면으로 대응합니다. 팔려간 노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최선과 성실을 다함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그의 성실은 그로 하여금 보디발 집의 가정 총무가 되게 하고 그 소유를 다 맡아서 관리하는 신임 받는 존재가 됩니다.( 39:3-6) 이 모든 배경에는 그의 삶의 기준인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39 3절을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39:3)라고 기록합니다. 불신자도 인정하는 성도의 모습이 드러나는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서서히 담을 넘는 축복의 큰 나무로 자라갑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자신을 함부로 죄악에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칩니다.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상황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축복으로 역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거룩한 꿈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울 정도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한 가지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되고 진정한 꿈의 적은 거짓 꿈이라는 점입니다. 헛된 꿈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이나 마음에 품었다고 꿈이 아닙니다. 아무것이나 결심한다고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정할 수 있고 기뻐하실 만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꿈이고 비전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공헌하고 이바지 하고 기여 할 수 있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비전이요 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추구할 때 인생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고난이나 역경도 의미가 있고 어려움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Oprah처럼, King 목사님처럼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십시오. 요셉처럼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꿈을 꾸십시오. 그 때 그 꿈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시련은 있으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유혹은 있으나 그 덫을 피하게 합니다. 고난이 있지만 그것을 훈련장으로 여깁니다. 시련이 있지만 더욱 단단해집니다. 어렵지만 성장을 이룹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는 성공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비전을 이루는 성취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그런 꿈을 이루는 꿈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을 유통하는 인생

 

세 번째로 요셉은 이룬 꿈을 통해 얻게 된 축복을 나누는 축복 유통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로 들어 드린 Oprah King 목사님의 삶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유통하는 담을 넘는 축복의 삶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는 요셉의 삶이 바로 담을 넘는 축복의 삶입니다. 축복을 유통하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가뭄과 기근에 빠진 애굽을 살려냅니다. 온 가나안 지경을 흉년과 아사의 위기에서 구해 냅니다. 자기의 온 집안을 구원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제들을 진정으로 용서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을 보면 요셉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흉년을 대비하는 정책을 펴고 장가를 간 것도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가 두 아들을 낳습니다. 이 아들들의 이름 속에 요셉의 신앙과 태도가 들어 있습니다. 큰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합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나의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41: 51) 쓰고 아픈 과거를 잊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고 사고의 발상을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전환 시킨 것입니다.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41:52) 하나님이 현재 주신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현재의 축복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뿐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창세기50장에 이르면 야곱이 죽습니다. 그 때 혹시 요셉이 자기들에게 과거의 일을 복수할까 형들이 크게 염려합니다. 그 때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9-21) 꿈이 이루어지면 상처가 치유됩니다. 요셉의 상처가 치유된 것입니다. 너그러워 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을 섬김과 베풂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교민 사회에서 가끔 먼저 정착한 분들이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악한 사람들을 가끔 접하게 됩니다. 자기가 받은 축복을 가지고 섬기고 봉사하기 보다는 억압과 착취의 수단으로 쓰는 불쌍한 사람들을 간혹 봅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봉사와 섬김의 기회로 삼습니다. 여러분, 꿈이 성취되면 그 성취를 섬김과 봉사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여러분, 축복 받으면 그 축복을 유통하심으로 주변을 살리시는 생명수 같은 인생을 사십시오. 그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축복의 나무를 더욱 무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축복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축복의 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분의 은혜의 궁정에 심으신 아름다운 백향목들입니다. 하나님의 샘 곁에 심긴 생명의 나무들입니다. 풍요의 삶을 약속 받은 거룩한 상속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는 모두가 성공자의 삶을 사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샘 곁에 심겨진 삶이란 전적 의존적 삶을 말합니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신감으로 사는 삶입니다. 나에게서 내 노력을 짜내어 사는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요에 연결된 삶을 말합니다. 말씀의 샘 곁에 심긴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꿈을 소유하고 매일 그것을 묵상하며 추구하는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꿈은 인생을 전진하게 합니다. 의미 있게 합니다. 목적을 분명히 해 줍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절제합니다. 인내합니다. 고통과 시련을 연단의 기회로 삼습니다. 특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권도 잘못 사용할 때는 독이 되고 해가 됩니다. 고생이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잘 이용하면 성공의 디딤돌이 됩니다. 여러분, 나만 고난 운데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만 불운한 처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두에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서로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해 못하고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기, 어떤 때라도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에 사로잡혀 꿈을 추구하는 인생이 사는 것입니다. 참된 꿈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꿈을 이룬 사람은 섬기고 봉사합니다. 나누고 사랑합니다. 축복을 유통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의 성취가 그 인생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담을 넘는 축복의 큰 나무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창성한 축복의 사람들이 되어서 축복을 유통하는 복의 근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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