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보아스와 룻; 신실함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Boaz and Ruth; Faithfulness Rewarded)

(Ruth 2:1-13; 4:1-17)

2016년 3월 3일(주이예배)

들어가는 말


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퇴근하자 아내가 기쁘고 밝은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식구가 한 사람 더 늘게 되었어요!!” 남편은 기대에 차서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결혼하면 다 그런 거지 뭐! 식구는 계속 들어나야 하는 거 아냐?” “여보, 고마워요. 친정어머님이 내일 시골에서 올라오신대요. 이제는 저희 부부와 함께 사시겠대요. 당신 마중 나가실 거지요?”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잘하는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아침저녁으로 숭늉을 떠다 바치면 조그만 차도 차갑다고 하고 조금만 뜨거워도 뜨겁다고 잔소리였습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으면 미지근하다고 잔소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며느리의 고통과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도 보통 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며느리는 사발을 눈에 파묻어 두었다가 꺼내자마자 그 그릇에다가 숭늉을 가져다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숭늉이 담긴 그릇이 아직도 차가운지라 “얘, 아가야, 숭늉이 왜 이렇게 차냐?”하면서 그대로 훅 들여 마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입천장이 다 데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이 낙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시어머니가 없었으니까요. 여러분, 처갓집과 시댁에 관계된 농담들 잘 아시지요? 특별히 고부간에 갈등을 묘사한 Joke들이 많습니다.


룻의 효성


아마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가 가장 아름다운 고부간을 묘사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조화로운 고부간의 이야기를 뛰어 넘는 영적 비밀을 담고 있는 믿음의 축복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곧 모두가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암흑기에 신실했던 한 젊은 과부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의 불안정한 시기에 베들레헴 전역에 기근이 임합니다. 더 낳은 삶을 위하여 한 가정 네 가족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모압으로 내려갑니다. 비극이 그들을 덮치고 가족 중 남자들 모두에게 죽음이 임합니다. 남은 사람은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모암 땅에서 얻은 두 며느리입니다. 시어머니도 과부요 두 며느리도 과부입니다. 그 중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입니다. 오르바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고 룻만 남습니다.(룻 1:14-15) 나오미는 다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결심을 합니다. 며느리 룻에게 자기를 떠나 다시 재가할 것을 권유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를 따릅니다.((룻 1:15-17) 그 때 룻은 후대가 기억할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


이러한 룻의 맹세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을 때 그들에게는 먹을 양식이 없었고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때 룻은 자진해서 시어머니를 공궤하고자 합니다. 그게 2:2절에 나옵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이 자발적으로 먼저 나서는 것입니다. 이방 여자요, 젊은 과부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 율법에 의하면 이삭줍기를 하도록 하는 것은 가난한 자와 이방인들을 또는 나그네를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제의 한 방법이었습니다.(레 19: 9-10; 신 24:19-22) 하지만 상당한 위험성이 동반되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을 보면 보아스가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젊은 여자가 이삭줍기에 나선다는 것은 희롱을 당할 염려도 있고 노동도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상


이런 룻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상하십니다. 본문 2:2-7에 기록됩니다.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때 마침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보아스가 추수꾼들을 격려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중매가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한 룻을 향해 인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아래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미혼인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배우자를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고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문에서 분명히 발견해야 합니다. 즉 자기 인간의 측면에서 취해야 하는 행동의 방향과 담대한 시도입니다. 물론 룻은 신랑감을 구하러 밭에 나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룻은 조금 위험하다고 도사리고 해야 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고 고된 노동이지만 모두가 그 모습을 칭찬할 정도로 자신을 헌신합니다. 저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자매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평가를 합니다. 그 평가 중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애는 물만 튀기는 애야!” 어디 가도 설거지 한번 바짝 붙어서 안 돕는다는 겁니다. 어른들도 계신데 자기 먹을 것만 야금야금 먹고 그냥 앉아서 턱이나 괴고 있다는 겁니다. 그 하나로 평가가 다 나는 겁니다. 물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를 묘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한 가지를 보면 모든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든 여자든 자기가 먼저 자기의 모습을 잘 평가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무슨 일에나 헌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위해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저는 우리 최승구선교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심한 상처와 고통을 당할 때도 절대로 그 상처 때문에 주저앉아 있지를 않습니다. 더 열심히 봉사하고 더 열심히 일합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합니다.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분을 축복하십니다. 모든 것 버리고 선교지에 갔더니 하나님이 선교지로 신부를 데리고 가시는 겁니다. 자기가 죽어라고 쫓아다닐 때는 안 되더니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떠났더니 하나님이 쫓아가셔서 중매도 서시고 결혼도 주선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먼저 자기의 헌신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밸런스가 맞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에비하고 계신 데 내가 너무 그 수준에 안 맞아도 곤란하고 내가 너무 하나님을 추월해서 앞서가도 안 되는 것입니다.


보응하시는 하나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룻에게 그냥 축복하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엡 2:8-9) 그러나 축복은 축복의 그릇이 준비될 때 더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됩니다. 신실함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보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는 낯모르는 이방 여자를 과분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하자 룻은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묻습니다.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0절입니다.

보아스가 대답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네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2장 11절과 12절입니다. 보아스는 예루살렘 사람인지만 이미 나오미와 룻에 대해 소식을 다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룻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과부인 것도 압니다. 그녀가 이방 여인인 것도 압니다. 그리고 그녀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어떻게 효성이 지극한지도 아는 겁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을 공궤하기 위해 고국과 자기 부모를 떠나 이방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민 온 것도 잘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가게도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식당도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교회도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사람이 소문이 좋게 나려면 그 사람의 행위가 룻처럼 행동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소문 가운데 평가하는 겁니다.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비스가 좋든 값이 싸든 물건이 좋든 무엇인가 좋은 소문이 날 만한 좋은 점이 있어야 합니다. 식당은 맛으로 승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식당은 음식 소문이 잘 나야 합니다. 교회도 소문이 잘 나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좋은 소문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운영하시는 모든 사업체가 좋은 평판으로 소문이 자자하시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룻의 소문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배후에는 그 사람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쫓기로 결단하고 진력했는지, 어떻게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섬겼는지..... 룻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를 보아스는 보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축복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룻이 축복 받고 잘 되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고 질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축복의 말이 막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2장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저는 이 보아스의 룻을 향한 축복의 기도를 우리 남편들과 아내들의 축복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서로 그렇게 기도해 주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이순옥의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이순옥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러분 서로에게 그렇게 축복 기도해주시고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결혼의 장애


이 사건이 있은 뒤로 몇 주 동안 밀과 보리의 추수 기간이라 룻은 들판에서 열심히 일합니다.(룻 2:23) 그 때 자기의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새 남편을 구해 주고 싶어 하던 시어머니 나오미는 이삭줍기의 과정 가운데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이 바로 보아스였던 것을 발견합니다. 게다가 그가 보아스가 자기의 남편 엘레멜렉의 친척으로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룻을 코치해서 보아스와 동침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바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룻을 아내로 취할 권리가 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입니다. 이에 보아스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나오미의 말대로(3:18) 그는 룻을 아내로 취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고 적법한 방법을 위합니다. 그러나 지체하지 않습니다. 침착하고 바르게 그리고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4장 1-17을 함께 읽겠습니다.


장애를 넘어서


친족 구원의 역할은 그 가문이 멸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 된 율법입니다. 그래서 자칫 빛으로 저당이 잡히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그 소유권을 되찾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으로 주는 땅은 하나님의 것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임대를 주듯이 나누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권리가 영원히 양도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회복 받고 다시 차지한다는 것은 곧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축복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친족 구원의 기능은 가까운 친척에게 먼저 그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이런 법을 잘 알고 있던 보아스가 장애를 가장 적절하고 신속하게 극복하고자 조치를 취합니다.


당시 재판소의 역할을 했던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 가장 가까운 친족이 지나가가 그를 청해 자기 옆에 앉힙니다. 그리고 성읍에서 열명의 장로들을 초청해서 재판 겸 증인석에 앉게 합니다. 그리고는 친족 구원의 율법적 의무와 그에 따르는 유익과 희생을 설명합니다. 그러자 그 친족은 자기의 경제적 손해와 결국 자기 이름으로 기업이 이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자기의 개인 기업에도 손해가 있을 까 하여 친족 구원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양도합니다. 그 증거로 전례에 따라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줍니다. 이에 보아스가 즉시 모인 모든 백성과 장로들에게 선포합니다. “보아스가 모든 장로들과 백성들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노라.” 본문 4장 9절과 10절입니다. 보아스는 우선적 권리를 갖고 있는 다른 친척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 후 그가 포기하자 룻과 그 기업에 대해 자기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에 임하는 사랑에 빠진 남자들의 역할을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확실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갖는 게 중요합니다. 그냥 사랑만 가지고 모든 것이 될 것이라는 환상은 실제 사랑을 이루는 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 유약하고 대책 없는 모습일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계획과 대책을 가지고 청혼을 하고 접근하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는 혹시 경쟁 상대가 있으면 그를 물리칠 수 있는 치밀한 전략과 실력을 가지고 청혼에 임해야 합니다. 셋째 사랑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 때문에 결혼에 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국 물질 때문에 사랑과 결혼의 행복을 포기할 사람일 수 있습니다. 넷째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이유를 보면 너무 재고 길게 끌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완벽하지 않듯이 완벽한 것을 찾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렇게 잘 생긴 존재가 아니듯이 너무 잘 생긴 상대만 고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큰 부자가 아니듯이 너무 부자만 고르지 마십시다. 내가 그렇게 엘리트가 아니듯이 너무 엘리트를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나오미의 신실한 소문과 평판, 그리고 보아스의 긍휼과 자비가 가득한 성품에 나오미가 매료되듯 상대가 얼마나 복음에 합당한 사람이냐를 먼저 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의 결혼식, 축복의 가문


오늘 결혼 예식과 잔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보아스와 룻은 주변의 축복 속에 아름답게 결혼에 골인합니다. 4장 11절에서 112절입니다. 그들의 축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13절과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4:13, 17) 보아스와 룻이 바로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족보가 왜 중요하지요? 마태복음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납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에수가 나시니라.”(마 1:1-16) 축복된 결혼 뿐 아니라 인류의 구세주가 오시는 인류 최고의 축복의 가문이 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 신실하고 자기 주변 사람에게 신실할 때 하나님은 신실한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 하나님과 시어머니에게 신실했던 룻에게 하나님은 축복된 결혼만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까지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신실했고 예수님의 성품을 그 삶 가운데 실천했던 신실했던 보아스에게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현숙한 부인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구세주를 그 가문에서 낳는 최고의 영광과 감당 못할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실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십니까? 말씀에 철저하고 신실하게 순종하십니까?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실하십니까? 룻이 시어머니에게 행했던 것처럼 그렇게 신실하십니까? 자발적으로 열심히 이삭을 주었고 부모님을 공격하고 섬겼습니까? 보아스처럼 삯군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빌며 룻 같은 보잘것없는 여인에게라도 신실하게 대하십니까? 우리의 삶을 한 번 점검해 보십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 주변을 향해 신실함을 회복하십시다. 그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저의 삶을 신실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귀하고 큰 것으로 반듯이 보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축복이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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