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의 영으로

오직 나의 영으로

(스가랴4:1-14)

주일 예배(2016 5 22)

들어가는 말

서기 전 589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옵니다. 그리고 서기 전 587년 드디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유다는 멸망합니다. 성전은 비참하게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 갑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당시의 통치자였던 바사의 고레스를 통해 유대인 포로들에 대한 해방의 칙령이 발표된 것입니다. 바사는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본토 귀환을 약속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 44:28-45; 29:14)

이 칙령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인 두 개의 판본으로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칙령에 보면 여호와께서 성전을 짓도록 고레스 자신에게 명령하였다고 선포하면서 유대인 포로들은 이웃들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허락하고 있습니다. 또 아람어 판본에는 성전 건축을 위한 국고의 지원과 성전 기구들의 반환하라는 명령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칙령에 의해 부푼 꿈을 안고 인솔자로 스릅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49,891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께 제사, 즉 예배를 드린 다음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귀환 후 2년이 지난 다음에 성전의 지대, 즉 기초가 놓이게 됩니다. ( 3:12-13) 이를 보고 많은 백성들이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그 크기가 작은 것을 보고 통곡하며 웁니다. (3:12-13) 솔로몬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너무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 세 번에 걸쳐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 첫 번째가 솔로몬이 지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BC 959; 왕상 6:1-38) 두 번째가 바로 본 장에 나오는 스릅바벨 성전입니다. (B.C. 516: 6:15-18) 지도자였던 스릅바벨의 이름을 따라 그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예수님 당시까지 남아있던 헤롯이 지은 헤롯 성전입니다. (B.C. 20 -A.D. 63) 스릅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지 약 70년만에 새로 지어집니다. 그리고 500년 동안 존재합니다. 헤롯 성전은 A.D.63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83년간 존재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맡겨진 사명: 성전 건축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땅으로 돌아온 이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그곳에 살던 이교들이 성전 건축에 참여해서 돕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스릅바벨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피가 섞이고 혼혈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순수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우리가 홀로 건축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4:3) 그러자 그 땅의 백성들이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합니다. 아무 진전없이 시간이 흐르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 건축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이 장애물들과 여러 가지 한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70년간의 비참한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게 그들의 현실입니다. 와서 보니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변했고 영광스럽고 웅장하던 솔롬몬 성전은 폐허와 쓰레기 더미처럼 보잘 것 없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임무는 불가능하게만 보입니다. (The task seemed impossible. Mission impossible!)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 150,000명을 고용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감독자만3,000명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는 겨우50,000명도 안됩니다. 그것도 노인들과 어린이들, 여자들을 포함한 인원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준비해 준 것을 포함해서 엄청난 재료와 재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아주 작은 자재와 자금이 있을 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임무는 정말 불가능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슬그머니 성전 건축 사역에서 빠져나가 자기 집을 짓는데만 열심을 냅니다. 마침내 성전 건축은 중단이 되고 지도자인 스릅바벨마저도 포기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전 건축의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때 학개선지자가 말합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너희가 이때에 편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1:4-8) 성전 건축의 임무를 격려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일곱 등잔과 함께 주어지는 메시지

이런 상황 가운데 스가랴에게 본문의 이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 등잔대의 환상입니다. 1절에서 5절입니다. 마치 성막의 지성소안에 서 있는 등잔대와 같습니다. 나중에는 이 등잔대가 성전의 지성소 안에 자리잡게 됩니다. (Similar to the lampstand that stood in the Holy Place of the Tabernacle, and later the Temple.)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등잔대 곁에는 두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등잔을 위한 관 (pipe)이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잊지 말고 수행해야 하는 매일 매일의 일과 중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등잔대에 기름이 떨어져서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스가랴가 질문합니다. 내 주여 이것이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천사가 스가랴에게 되묻습니다.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주여, 내가 알지 못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스가랴에게 입합니다. 여호와께서 스릅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to Zerubbabel :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Zech 4:6)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시는 능력으로만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성공과 성취는 오직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받아 누리게 됩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어떤 분들은 마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놀라십니다. 하지만 이 진리는 우리 인생들이 깨닫고 항상 기억하고 언제나 무슨 일에나 적용해야 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성령의 사역하심은 여러분들과 저의 삶에 가장 확실하게 개입하시는 은혜의 방법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진리는 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잊을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이론으로만 알고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스릅바벨이나 대제사장의 여호수아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의 힘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자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과 사역하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가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을 때 역사는 나타납니다.

열왕기 하 5장에 나타나는 문둥병자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힘과 권력으로 되었습니까? 그 사람의 자원과 재물로 되었습니까? 요단강 물이 시리아의 물보다 더 약효가 있어서 고침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해 청소년들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가 열렸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유명한 그리스도인 스포츠맨들이 강사로 초청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장애인 대회에 나가 우승한 사람도 있었고 정상이면서 유명하고 대단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한 선수가 자기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해 사과를 한손으로 잡고 쥐어 짜서 쥬스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제 육체가 이렇게 강한 것처럼 저는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저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하고 간증을 마쳤습니다. 간증이 바쳐지고 결단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한 소년이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았습니다. 목사님이 그 소년을 강단으로 초청해서 물었습니다. ‘무엇이 오늘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만들었지요? 간증때문인가요?’ ‘!’ ‘저 힘쎈 선수의 간증이 마음에 와 닿았나요?’ 그 소년은 약간 망설이면서 대답했습니다. ‘힘센 선수가 아니구요 저 휠체어를 탄 분의 간증입니다. 저분이 예수님은 자기의 약할 때 예수님이 도와 주시고 그것이 자기의 삶을 의미있게 한다고 이야기 하실 때, 그 예수님은 나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도와 주실 것을 확실히 믿게 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의 작은 것을 통해 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기록해서 저희에게 격려와 위로를 줍니다. 여러분, 모세가 양치기 목동 때 쓰던 지팡이를 사용해서 홍해를 가르신 것 기억하십니까? ( 4:2) 다윗의 물맷돌과 다섯 개의 조약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 생각나십니까? (삼상 17) 삼손이 나귀턱뼈를 사용해 불레셋사람 천명을 죽이고 승리한 이야기 아십니까? ( 1515)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르는 분 계십니까? ( 6:9) 일일히 말할 수 없이 엄청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힘으로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힘으로 능력으로 인생을 승리하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조금만 자금이 더 있었으면 사업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났으면 내 삶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만 좋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공부를 잘하고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보다는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유를 대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좋은 조력자를 만났다면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선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4:6)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분은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아멘!” 하신 보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되게 하고 이루시는 축복이 임함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밀요한 것은 더 큰 힘과 더 큰 능력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연혼 깊은 곳에서 인정하고 신뢰하는 하나님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지식위에 굳게 서는 확실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사명을 이루십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성공과 성취를 이루는 은혜의 수혜자들이 되게 하십니다.  

장애물을 친히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또 한 가지 커닿란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바로 장애물을 친히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7절을 보십시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릅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4:7)  스릅바벨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지는 장애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살펴 본대로 이방족속들은 성전 공사를 반대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방해합니다. 자원과 자금은 항상 모자라고 공급원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함께 공사를 하던 동료들과 유다인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가서 모른체하고 자기 집일만 챙깁니다.

여러분들도 사시면서 이런 비슷한 경험 많이 하셨을 것이고 어쩌면 현재에도 그런 곤란한 환경가운데 힘들어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터져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평소에 내 일에 신경도 안쓰던 사람이 나타나서 괜히 간섭하고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립니다. 자금도 떨어지고 운용한 자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이 세상 일이 절대로 내 마음과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사명을 이루고 인생의 성공과 성취를 이루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산을 평지로 만드시는 하나님, 장애물을 계단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때 주변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고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릅바벨이 하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을 연호하게 됩니다.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God bless it! God bless it!” ( 4:8)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이루는 데 방해되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들을 대적하던 모든 사람과 환경들이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축복하고 돕는 손길들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일을 이루게 하시고 완성하게 하시는 하나님

          마지막 세 번째는 일을 이루게 하시고 완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8절과9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스릅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를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4:8-9) 여러분, 우리는 영적 싸움이나 세상 삶을 혼자 살아가도록 고아처럼 내팽개쳐진 외로운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붙잡힌 하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어딜 가든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앞에서 먼저 행하시고 뒤에서 도우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감옥에서도 고백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1:6) 실패자정도가 아니라 핍박자였던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모든 일을 끝까지 그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을 매일 경험하고 산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모든 악한 일에서 나를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관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딤후 4:17-18) 바울 뿐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은 고난과 역경가운데에도 요셉의 꿈을 지키시고 마침내 이루어 주셨습니다. 살인자가 되어 두려움 가운데 도망자의 신세가 된 모세를 하나님은 바로에게 신같은 존재로 만드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높이 세우시고 사명을 완수하도록 함께 하셨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신 하나님은 피곤하고 위태롭게 쫓기는 몸으로 긴 세월을 보냈지만 마침내 그를 이스라엘의 최고의 성군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얼굴을 둘 수 없을 정도의 부끄운 실패자가 된 베드로를 만나 회복시키시고 마침내 사명을 완수하게 하셨습니다.

혹시 바울과 베드로는 실패자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실패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패자가 되어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를 성공자로 만드십니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완주를 못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결승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 건축을 하다가 실망하고 지쳐서 포기하고 주저 앉아 있는 스릅바벨을 향해 격려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내게 하십니다. 그게 바로 스릅바벨 성전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나가는 말

주님의 몸인 교회는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야 할까요? 혹시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주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시간보다 프로그램을 짜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앞에 놓고 기도로 무릎을 꿇으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세상적 논리로 교회공동체를 세우려 하지는 않습니까?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려 하거나 교회에서 세속적인 명예나 칭찬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저나 장로님들, 혹은 권사님들, 그리고 목자나 셀장들이 성도들을 섬기는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던 유다인들이 겪은 일들과 비슷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지도 않은 방해자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사역에 진전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영적 침체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경제적으로는 더 어려워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낙망하고 절망해서 포기해야 할까요?

교회 공동체를 넘어서 여러분의 일터와 가정에 적용을 해 보십시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모처럼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뭔가 되는 듯 하더니 방해꾼들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속을 썩입니다. 아내가 속을 긁어 놓습니다. 자녀들이 탈선합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냉정하게 떠나고 자금줄은 막혔습니다. 가족들도 비난하고 한편이 되어 주지 않습니다. 있는 힘과 능력을 다해 애를 써보지만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진은 커녕 더 미궁에 빠져들고 일은 더 꼬입니다. 그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선명하게 정답을 말씀하십니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느니라.” (4:6)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믿고 의지함으로 승리하시고 성취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는 장애물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릅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 4:7)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친히 성취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인생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릅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 4: 8) 사방이 막히고 절벽같은 인생의 위치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도 하나님을 기대하는 영적 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일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결코 경험해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전능하신 우주의 창조주요 운행자이신 하나님의 영에 의지하여 승리하시고 성취하시고 누리시는 인생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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