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팬이어서 그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옆에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던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이라는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 분이 책을 썼는데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Not a fan”입니다. 한국말로 번역이 되었는데 “팬인가, 제자인가”입니다. 부정의 언어를 사용해서 간명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 책은 마치 집도의의 수술칼과 같이 영혼의 폐부로 깊이 파고드는 영적 힘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제자도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팬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헌신의 응답입니다. 제자는 팬이 아니고 팬은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누가 아닌 것으로도 분명하게 자신을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가짜가 아니기에 진짜인 것과 같습니다. 내가 누가 아닌가라는 부정의 언어를 사용해서 오히려 내가 누구인가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정의 언어 용법은 “적당히”라는 용어 속에 착각하면 살아 가는 사람들의 망상을 깨뜨리는 건설적 파괴자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제자다. 성경을 알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름 나도 제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것은 팬이지 제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팬은 대상에 대한 지식은 풍성하지만 인격적 사귐이 없습니다. 팬은 대상을 향한 선망과 환호는 있어도 헌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팬은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팬의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팬이 많아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다만 전적으로 항복하고 헌신한 제자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팬이라도 되어 주는 게 얼마나 귀중한가!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냉담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의 최대의 방해물은 바로 팬으로 적당히 남아 있는 신앙의 태도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팬의 자리를 박차고 제자의 자리로 나오라는 도전의 표어로 “not a fan”을 내놓습니다.
니고데모처럼 주님을 얻고 그 분이 주시는 영생을 얻고자 하지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 예수 이름으로 손해 보기를 거절하는 자는 팬이지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팬의 다른 이름은 종교인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주님과 인격적 교감이 없는 적당한 거리의 관람객입니다. 팬의 또 다른 이름은 양다리입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지만 나의 꿈과 나의 가족, 나의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 기껏해야 팬이지 제자가 아닙니다. 아이들먼은 집요하게 성경 구석구석을 뒤져 자칭 제자이지만 실상은 팬에 불과한 자들을 찾아내 고발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이 고발당하는 당사자라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친 니고데모속에 내가 있고 지식만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 속에 내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책 전체에 흐릅니다. “당신은 팬인가? 제자인가? 이제 보니 기껏해야 팬이지 제자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담스럽고 성가신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발장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성경적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팬인가? 제자인가?”
정기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