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도 슬픈 소식
<기쁘고도 슬픈 소식>
(사무엘하 18:16-23)

상수리 나무에 머리채가 걸려 발버둥치던 압살롬은 요압의 칼에 심장을 찔린 후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맞아 죽습니다.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 달라는 아버지 다윗의 간절한 요청을 무시하고 반역자를 처단한다는 명분아래 가차없이 처결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전장에서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요압은 모반을 한 구테타군의 우두머리를 죽인 공로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부탁과 명령을 어긴 거역자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인 다윗의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은 비정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의 군사적 권세가 강해지자 왕명을 은근히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묵상해 봅니다. 한 평생을 무엇을 추구하고 도모하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오고 공평하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압살롬은 살아있을 때 스스로를 위하여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위해 쌓은 기념비가 실상은 자신의 반역의 역사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수치의 비석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18)

압살롬이 죽고 반란군이 진압되자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요압의 오랜 친구인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자청하고 나섭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기쁘고 좋은 소식이기도 하지만 슬픈 소식이기도 합니다. 압살롬을 죽음은 반역자의 죽음이만 동시에 왕의 아들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생의 경륜이 많고 노련한 요압은 그를 만류합니다. 아히마아스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충고하고 만류하는 것입니다. 요압은 구스 사람을 선택해서 전령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아히마아스는 다시 요압에게 청합니다.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다름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 가니라" (22-23)

요압의 반역으로 둘로 갈라졌던 나라가 다시 하나가 되고 나뉘었던 백성이 뭉치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본질은 다윗에 대한 징계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이 이끈 전쟁이기에 다윗은 달콤한 승리가 아닌 아들의 죽음이라는 가슴 아픈 상실의 고통을 함께 경험합니다. 복음이 이와 같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주는 능력이요 기쁜 소식이 되지만 거역하는 사람에겐 심판과 멸망이라는 불행의 소식이 됩니다. 우리는 같은 사건속에 담긴 이런 양면성을 잘 이해하고 기쁜 소식이 내것이 될 수 있도록 바른 선택을 하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부족하기에 매 순간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과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전령입니다.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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