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하라.

<고난하는 자들을 위해 중보하라.>
(예레미야 애가 5:1-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1-2) 중보기도는 성도의 가장 보편적인 의무이며 가장 귀중한 특권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를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5:16) 예레미야가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포로가 된 유다를 위해 하나님께 중보기도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치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되었습니다. 모든 권리를 빼앗겨 땔깜으로 쓸 나무와 물조차 돈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기본적인 것조차 공급되지 않는 처참한 지경이었습니다. 애굽이나 앗수르에게 손을 벌려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죄때문입니다. 죄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적인 도움이나 임시 방편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당대의 죄일 뿐 아니라 조상부터 내려오는 모두가 책임있는 죄였습니다. 바로 우상숭배와 불순종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자신의 죄를 끌어안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통곡하며 중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는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1)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위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30-31) 예루살렘의 패망의 배후에는 단 한 명의 진정한 중보기도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시대와 영적 모습을 성찰해 봅니다. 물론 이 성찰의 대상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요즈음 교회속에서 마음을 찢는 기도를 드리는 경우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금식기도를 잊은 지 오랩니다. 눈물을 흘리며 깊이 기도하면 청승을 떤다고 생각하고 탄식하며 마음을 쏟으면 감정에 치우친다고 말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응답이 왜 주어지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들은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냐고 묻지만 하나님은 어찌하여 깨지지 않는 견고한 돌이 되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오늘 기도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속에서 진정한 중보기도의 모습을 봅니다. 참되고 진실된 중보기도자 예레미야를 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하는 동안 모든 것은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상항속에서도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있습니다. 중보기도가 멈추는 순간 세상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멈추십니다. 중보기도는 우리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게 갚이리라" ( 22:27) 중보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이요 가장 절절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중보기도를 주변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시며 각자의 자리에서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행복한 중보기도자입니다. 정기옥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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