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사도행전 4:13-22)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13) 그들이 생각하는 "학문 없는 범인"이라는 말은 자기들처럼 유명한 랍비와 같은 종교 지도자 밑에서 수학하고 훈련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담대하고 지혜로워집니다. 자기 보호에 급급했던 제자들이 성령 하나님께 사로잡히자 그분의 의지대로 사용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 신학 대학에서 삼년 간이나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모든 것을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진짜 살아있는 신학교육과 목양 실습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복음증거는 수사학이 아니라 확실한 자신의 신앙고백이요 간증인 것입니다. 당연히 힘이 있고 권세가 드러나는 설교였습니다.

당황한 종교지도자들은 제자들을 밖에 나가 있도록 한 후 서로 의논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16-17)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정직하고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보며 절망하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나음을 입없다면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수없이 많은 백성에게 얼마나 큰 소망의 소식일까요? 오히려 더 격려하고 전파해서 백성들에게 소망을 전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훼방하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8) 왜 위협할까요? 스스로 옳지 않음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이 궁지에 몰릴 때 사용하는 가장 비겁하고 졸렬한 수단이 위협입니다. 아무리 금지시키고 위협해도 십자가와 빈무덤의 사실은 가릴 수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음을 입고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현실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경고와 위협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19-20)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모두 달아났던 제자들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후 극적으로 달라진 모습입니다. 자기들의 안전이나 목숨이 먼저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에 생명조차 헌신하는 완전히 변화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 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태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타협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판단과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까? 당신은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정기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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